-배터리 종류와 브랜드 가치 사이 고민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판매된 중국산 테슬라 모델Y는 모두 1만2,879대다. 그리고 모델3는 9,002대에 달한다. 그리고 이들 차종의 생산지는 모두 중국이다. 하지만 적용된 배터리는 조금씩 다르다. 스탠다드 트림에는 CATL의 LFP 배터리가 탑재된 반면 롱레인지는 LG에너지솔루션의 NCM 소재의 배터리가 적용됐다. 그런데 완성차 업계에선 판매되는 중국산 테슬라 제품의 70% 이상을 스탠다드 트림으로 추정한다. 가격이 그만큼 저렴한 탓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산’, ‘LFP’ 등이 국내 소비자에게는 부정적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 2월 향후 2년 내 전기차 구입의향자 546명을 대상으로 배터리에 대한 인식을 물어본 결과 LFP 배터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마디로 가격 외에는 장점이 없다는 응답이 대다수다. 더불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인식도 물어본 결과 구입할 수 있지만 전제는 낮은 가격을 꼽았다. 동시에 4명 중 3명은 중국산의 품질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결론만 보면 ‘중국산’과 ‘LFP’가 모두 부정적인 단어로 각인돼 있다.
그렇다면 중국산 테슬라 판매도 주춤거려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인식과 크게 다르다. 중국산이면서 LFP 배터리를 탑재한 테슬라 전기차는 한국 내에서 승승장구한다. ‘테슬라’ 브랜드가 ‘중국산’과 ‘LFP’의 부정 인식을 상쇄시킨다는 의미다. 이는 그만큼 ‘테슬라’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뜻과 같다.
흥미로운 점은 테슬라 주식 보유 현황이다. 지난 7월 기준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 주식은 테슬라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7월4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의 테슬라 보유 주식 금액은 20조3,000억원이다. 이들은 테슬라 전기차가 많이 판매될수록 주가가 오른다는 점에서 테슬라의 국내 판매 확대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반면 국내 이차전지 분야에 투자를 집중한 사람에게 중국산 테슬라의 국내 확장은 불편하다. 중국산 LFP 배터리가 늘어날수록 국내 배터리 기업의 NCM 비중은 낮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둘 모두 전기차 확대를 바라지만 조금 내면으로 들어가면 이해가 상충된다.
여기서 현대차는 갈등한다. ‘중국산’, ‘LFP’의 부정적 인식을 받아들여 NCM을 늘리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반면 국산 전기차에 LFP를 사용하면 소비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다. 이때 선택 가능한 옵션은 국가별 적용 전략이다. 동일 차종에 NCM과 LFP를 국가별로 달리 채택하는 방식이다. 이는 테슬라의 주행거리 트림 선택과는 조금 다르다.
테슬라는 짧은 거리의 저가는 LFP, 장거리의 고가는 NCM을 선택했다. 이와 달리 국가별 배터리 옵션은 원산지와 양극재 종류를 구분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선 NCM을 적용하되 소득이 낮은 국가로 내보낼 때는 중국산 LFP를 탑재하는 것이다. 반대로 원산지 규정이 까다로운 나라로 수출할 때는 NCM을 적용하면 된다.
그런데 현대차도 내심 테슬라처럼 LFP 선택을 확대하고 싶어한다. 그만큼 원가가 절감돼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전기차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LFP 적용 유혹은 뿌리치기 어렵다. 오히려 소비자에게 테슬라는 LFP 적용이 허용되고 현대차만 안되는 이유를 되묻곤 한다. ‘국산차+국산 NCM 배터리’ 공식이 유독 현대차에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다.
테슬라는 ‘전기 완성차+가격 경쟁력’인 반면 현대차는 ‘전기 완성차+비싼 배터리’를 요구한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주식 투자 부문에서 묻지마 투자가 유행했고, 이때 이차전지에 돈을 쏟아부은 사람들이 현대차의 중국산 LFP 배터리 적용을 비판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내부적인 품질 기준에 따라 엄격한 시험을 거치고 완성차기업 눈높이에 맞는 동일 품질 기준을 통과했음에도 ‘중국산 LFP’는 국내 배터리 기업의 주가 하락을 유발할 수 있어 일종의 신성 불가침 영역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그 사이 테슬라는 LFP 적용에 따른 가경 경쟁력 확보로 국내 전기차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어쩌면 국내 소비자 스스로 한국산을 역차별하는 것은 아닌지 사뭇 궁금할 따름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