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토리얼 에너지 2차 샘플, 실차 시험 진행
미국 코넬대학 화학과 압루나 교수가 자동차용 고체 전해질 배터리 개발에 나선 때는 2013년 이다. 제자들과 함께 팩토리얼 에너지(Factorial Energy)를 설립해 고체 전해질 배터리 가능성을 선보였다. 공동 창업자로 참여한 시유 황 CEO도 코넬대학 화학과 출신이고 CTO를 책임진 알렉스 유 박사는 압루나 교수의 제자다. 그런데 이 회사가 시선을 끄는 이유는 완성차기업의 적극 참여다. 이사회 구성원 중 마이클 블라이는 스텔란티스 글로벌 추진체 담당 부사장이며, 우베 켈러 메르세데스 벤츠 배터리 개발 총괄과 파나소닉 CEO 출신의 조 테일러 등이 포진해 있다. 그리고 회사의 고문으로는 한때 세계 자동차 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다임러그룹 CEO 출신의 디터 제체 박사다. 참여 인물만 보면 그야말로 쟁쟁함, 그 자체다.
하지만 더욱 흥미를 끄는 이유는 참여 기업이다. 팩토리얼의 기술을 인정하고 파트너로 참여한 곳은 메르세데스 벤츠 외에 스텔란티스그룹과 현대차그룹이다. 그리고 지난 4월, 팩토리얼은 LG화학과 전고체 배터리 소재 공동 개발 협약을 맺었다. 한국 내 배터리 셀 생산을 염두에 둔 파트너십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팩토리얼의 샘플을 시험하는 완성차회사다. 최근 팩토리얼은 ㎏당 450Wh의 전고체 배터리 ‘솔스티스(solstice)’를 향후 5년 이내에 개발, 생산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에 앞서 ㎏당 391Wh 밀도의 고체 전해질 셀은 이미 메르세데스 벤츠에 보내 광범위한 실차 시험을 거치는 중이다. 세 곳의 완성차기업 파트너 중 팩토리얼이 우선 선택한 곳은 벤츠다.
그리고 샘플을 보낸 이유는 단 한 가지, 벤츠의 시험 조건 때문이다. 시험 기준이 가장 까다롭다는 벤츠의 자격 시험을 통과해야 글로벌 경쟁력이 인정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실제 벤츠 시험에 통과한다는 것은 다른 완성차기업에게 별도로 기술을 설명할 이유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한국을 찾은 팩토리얼 에너지 알렉스 유 CTO는 벤츠의 첫 번째 실차 시험 결과가 좋았던 만큼 2차 샘플 시험도 좋은 결과를 장담했다.
현재 전고체 배터리 개발 경쟁은 치열하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CATL 등의 거대 배터리기업부터 팩토리얼, 스탠포드대학에서 분사한 퀀텀스케이프, 일본 무라타제작소, 토요타자동차, 대만의 프롤로지움, 광저우자동차, 폭스바겐이 투자한 노스볼트 등 주요 완성차 및 전문 스타트업이 고체 전해질 개발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한국에선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과 스타트업 에이에스이티가 고분자계와 산화물계를 혼합한 하이브리드형 전고체 전해질 개발을 마치고 대량 생산 준비에 착수한 상황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험실 내의 개발 여부가 아닌 실차 적용이다. 어떤 기업이 가장 먼저 전고체 배터리를 적용하느냐를 두고 시간 경쟁이 펼쳐진다. 실험실 내부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해도 기후, 도로, 사용자 특성, 이용 행태 등 수많은 운행 조건을 감안해야 하는 자동차에 탑재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은 탓이다.
오히려 실차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도 생존이 어렵고, 반대로 완성차기업은 배터리가 곧 완성차의 일부분이라는 점에서 탑재 결정에 신중함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팩토리얼이 벤츠에 2차 샘플을 공급했다는 것 자체는 벤츠의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가 임박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흔히 EV 전환을 얘기할 때 배터리 3단계 전략이 언급된다. 1단계가 액제 전해질 기반의 리튬인산철 양극재의 저가 보급이라면 니켈 등이 포함된 NCM 양극재는 2단계 고급형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고체 전해질 배터리는 EV 게임체인저로 주목받는 3단계에 해당된다. 에너지밀도가 높고 화재 또한 없어서다. 따라서 벤츠가 팩토리얼 전고체 배터리의 실차 시험에 집중하는 이유는 고체 전해질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결국 EV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인 배터리 시장을 전고체로 주도하겠다는 의미다. 배터리 관리 시스템의 완벽성 추구 노력을 이제는 고체 전해질 배터리에 옮겨 제품 가치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가장 어려운 시험 문제를 배터리 기업에 냈고, 팩토리얼은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중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