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의 목적은 우리 호기심 충족이 아닙니다. 차의 내구성과 성능을 테스트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고 동시에 자동차 팬들을 흥미롭게 할 수 있어야 하며 일본 자동차 산업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1950년대 초 토요다 기이치로는 모터스포츠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매 순간 자동차의 한계를 시험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기술력과 도전 정신을 세계에 알리기에 최고의 무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에 패한 일본은 경제 재건에 매진하고 있었고 자동차 산업은 도약의 시기를 맞고 있었던 만큼 모터스포츠가 자신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도전의 시작, 랠리
그렇게 1957년 토요타는 호주의 '모빌가스 라운드 오스트레일리아 랠리'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호주 대륙 변두리 1만4,484㎞를 달려야 하는, 포장 도로가 단 5%에 불과한 척박한 레이스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무모한 도전이라고 여겼다. 일본의 작은 자동차 회사가 험난한 호주의 사막을 달린다는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팀원은 고작 3명. 일본에서 파견된 2명의 일본인 정비사와 호주인 드라이버 1명, 개조를 거친 토요타 크라운 뿐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86대 중 52대가 완주에 성공한 레이스에서 47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한다. 일본의 자동차 회사가 처음으로 국제 모터스포츠 대회 참가한 기록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토요타는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했지만, 토요타는 이를 기회로 삼아 도전했다.
1972년, 스웨덴 출신의 오베 안데르손이 이끄는 팀은 '셀리카 1600GT'를 몰고 RAC 랠리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다. 유럽의 험난한 도로는 토요타에게 마치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이를 오히려 자신들의 기술력을 시험하는 무대로 삼았다. 1975년에는 '코롤라 레빈'이 1000 레이크 랠리에서 승리를 거두며 유럽에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했다.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맛보다
1980년대에는 르망에 진출한다. 이들은 온로드 레이스카만이 참가할 수 있는 그룹 C에 참가해 유수의 유럽 자동차 회사들과 맞섰다. 재규어가 V12 엔진을, 포르쉐가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과시하며 달리는 서킷에서 토요타는 2.0ℓ 엔진으로 맞섰다. 결과는 종합 12위. 상위권이라 할 수 없었지만 첫 출전만에 완주했다는 점에서 만족해야했다.
한편으로는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은 자동차 경주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곳이었고 이 무대에서 성공은 곧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기회였다. IMSA GTU 클래스에 셀리카로 참가하며 미국의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기술력을 입증했다.
이 같은 작은 성과들이 켜켜이 쌓인 1990년대. 토요타는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황금기를 맞는다. 1992년 르망에서는 3명의 일본인 드라이버가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첫 르망 포디움을 달성한다. 셀리카를 앞세운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서는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거머쥐었다.
성공가도만 달렸던 건 아니다. 토요타는 1995년 WRC 규정 위반으로 참가 자격을 박탈 당한다. 2002년 도전장을 내민 포뮬러 원(F1)은 높은 비용과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로 진출 7년만인 2009년 전격 철수를 결정한다.
▲마침내 르망을 지배하다
2010년대에 들어 토요타는 내구 레이스에 집중했다. 차의 성능 뿐만 아니라 팀워크와 인내를 시험하는 무대였다. 이들은 2012년 이들의 장기였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앞세워 르망 24시에 참가한다.
쉽지는 않았다. 효율성과 내구성에 초점을 맞췄지만 사고와 고장으로 매번 우승을 놓쳤다. 2000년대 들어 11승을 이어오며 르망을 제패하고 있던 아우디도 넘기 어려운 거대한 산이었다. 포르쉐도 토요타와 마찬가지로 하이브리드를 앞세운 상황. 여러모로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2016년 르망은 토요타에게 유독 뼈아픈 순간이었다. 새로운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춘 TS050이 경기 종료 6분을 앞두고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 종료 3분을 남겨두고 결승선 근처에서 완전히 멈춰섰다. 포르쉐에게는 반대로 극적인 순간이었다.
절치부심한 2017년 토요타는 TS050의 차체를 제외한 모든 부품을 갈아치웠다. 엔진 성능을 높이고 전기모터는 경량화 하는 한편 회생제동 시스템의 효율을 극대화했다. 기세를 얻은 토요타는 경기 초반 승기를 잡았지만 결국 또 다시 포르쉐에게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토요타는 2018년 르망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직전 경기에서 포르쉐가 367랩을 돌아 우승한 반면 토요타는 388랩을 돌며 경쟁자를 압도했다. 이후로도 승리 행진이 이어졌다. 2019년엔 원투피니시, 2020년에는 1·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들은 2023년까지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내구 레이스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기록했다. 이들이 르망에서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당시 CEO로 회사를 이끌고 있던 토요다 아키오 회장의 우승 소감으로 잘 알 수 있다.
"승리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준 위대한 라이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여정은 단순한 기술 개발 과정이 아닌 열정과 도전, 실패와 성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의 역사는 격동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오늘도 토요타는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승리를 위한 것은 아니다. 멈추지 않는 열정과 꿈을 향한 다짐의 표현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