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마테 리막의 도전, 그리고 반면교사

입력 2025년02월25일 09시45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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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착화된 국내 분위기 바꾸기 어려워

 -참신하고 새로운 시도 꾸준히 이뤄져야

 

 1988년 크로아티아 태생 마테 리막(Mate Rimac)이 1984년형 BMW 3시리즈를 전기차로 개조했던 때는 2007년, 그의 나이는 19세 되던 해다. 그리고 23살이던 2011년에는 전기 스포츠카 컨셉트 원(Concept One)을 만들었다. 천재 엔지니어로 인정받았던 그는 어떻게든 크로아티아 내에서 자동차산업을 일으키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바 있다. 

 



 

 사실 마테 리막의 천재성은 일찌감치 증명됐다. 고교 시절 전자 혁신 분야에서 여러 국제대회 수상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특히 2006년 한국발명진흥회 주최 학생 발명 전시회 국제 부문에서는 그는 아이글로브(iGlove) 제품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전기로 구동되는 휴대용 키보드 겸 마우스를 구상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어 자동차 운전 때 사각지대를 자동으로 없애주는 미러 시스템을 개발해 국제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리막이 처음 만든 컨셉트 원은 순수한 취미로 개발됐지만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공개돼 주목을 끌었다. 제품 개발에 필요한 핵심 부품 24가지를 직접 만들고 특허도 취득한 점이 투자자의 관심을 유발했다. 이어 2013년 양산을 발표하며 가격은 무려 98만 달러(한화 약 14억원)로 책정했고 생산 목표는 88대를 제시했다. 2016년 최종 버전인 컨셉 S가 제네바모터쇼에 등장했고 2017년에는 BEV 최고 속도 기록을 경신했다. 

 

 물론 이 과정이 모두 마테 리막 홀로 이뤄낸 성과는 아니다. 2010년 합류한 GM 출신 디자이너 아드리아노 머드리의 역할도 컸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마테 리막은 기술, 아드리아노는 디자인을 맡아 목표 사양을 결정했고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차가 컨셉트 원이다. 그러자 이들에게 두 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곳이 아랍에미레이트의 왕족이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창업에 나섰지만 어려움은 당연했다. 돈이 없어 창고 임대료는 물론 급여도 지급하지 못했다. 중동 지역으로 개발과 생산을 옮기는 것을 전제로 투자 제안이 있었지만 마테 리막은 크로아티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이를 두고 마테는 훗날 자신이 결정한 여러 선택 중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돈을 벌어야 했던 만큼 수익은 다른 자동차회사의 전기 시스템 개발로 방향을 돌리기도 했다. 

 

 이때 리막을 지켜본 곳이 중국이다. 2017년 중국 카멜 그룹이 리막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고 이듬해는 폭스바겐그룹도 고성능 전기차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지분을 획득했다. 2019년에는 현대차그룹도 리막이 보유한 기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투자를 단행했다.

 

 자금을 손에 쥔 리막은 독일 제조사들의 고성능 전기차에 파워트레인을 공급하며 실력을 검증받았다. 그리고 지난해는 네베라(Nevera) BEV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기차에 등극했는데 최고시속은 무려 412㎞에 달했다. 4개의 전기모터가 최고 1914마력을 발휘하며 시속 96㎞까지 도달하는데 1.85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차명인 ‘네베라’는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갑자기 발생하는 폭풍을 의미하는 크로아티아어에서 유래됐다. 크로아티아를 상징하며 자동차업계에 갑자기 등장해 폭풍을 일으킨 리막오토모티브를 함의하는 셈이다. 

 

 여기서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곳은 한국이다. 크로아티아보다 월등히 BEV의 기술 인프라가 갖춰진 한국에서 리막 같은 기업의 등장이 오히려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만 정작 자동차 개발 영역에 진입하면 번번이 주저앉기 일쑤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여러 이유를 내놓는다.

 

 기술적 재능이 있어도 제도화 된 교육 체계에서 안정된 삶을 추구하려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자동차 부문은 대기업 중심의 규제가 새로운 자동차 개발을 억제하는 요소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고착화된 이런 분위기를 바꾸기는 어렵다. 누군가 단단한 지붕을 뚫고 나오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데 시도 자체가 어렵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박재용(공학박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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