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가치 사슬 완성, 현대차그룹도 영향
한 동안 토요타의 EV 전략을 두고 많은 말이 오갔다. 그 중에서도 주요 평가는 EV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때마다 토요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EV 시장 규모를 감안했을 때 아직은 성숙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여전히 소비자는 ICE(내연기관)를 선호하고 그 중에서도 고효율인 HEV를 찾는 사람이 훨씬 많았던 탓이다.
그런데 최근 토요타의 행보가 달라졌다. EV에 본격 투자를 단행해 미래 시장에 대비하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토요타 관점에선 EV 시장이 어느 정도 무르 익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첫 행보는 중국 내 경쟁력 강화다. 토요타는 최근 1만5,000달러 가격의 5인승 전기 SUV bZ3X를 중국에 내놓기로 했다. 기존 세단형 bZ3보다 30% 가량 저렴하다. 합작사인 광저우토요타에서 생산해 판매 지역은 중국에 한정되는데 뱃지만 토요타일 뿐 대부분의 부품은 중국 내에서 조달한다. 그만큼 중국 내 부품 조달이 원가 절감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탓이다.
동시에 점차 커지는 유럽 EV 시장에는 9종의 신제품을 쏟아내기로 했다. 당장 내년에 bZ4X, 어반 크루저(Urban Cruiser), ‘C-HR+’를 내놓고 렉서스 브랜드로는 SUV ‘RZ’를 투입한다. 점차 EV 구입 비중이 높아지는 유럽 상황을 고려할 때 HEV 중심의 ICE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지난해 유럽에서는 전년 대비 13.1% 증가한 100만대 실적을 지속적으로 견인하려면 EV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본 셈이다.
토요타의 EV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는 새로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다. 토요타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성숙도’를 중요한 지표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초기 시장에 가담하기보다 시장 규모가 일정 크기로 형성되면 막대한 투자를 기반으로 최단 시일 내에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는 전략에 익숙하다. 따라서 토요타의 본격적인 EV 시장 가담은 그만큼 글로벌 EV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는 의미로 다가오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다소 늦은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내 자동차 애널리스트 나카니시 다카키는 자신의 저서 ‘토요타 EV 전쟁’에서 토요타가 HEV와 수소 등에 집중 투자하면서 배터리 기반 전동화 전환이 다소 늦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토요타의 전략 변화가 보통 10년 주기로 이루어져 왔다는 점에서 EV 전략을 바라봐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토요타 일본 본사 관계자는 “10년 전 토요타 관점에서 EV 시장은 형성기였을 뿐 뛰어들 만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토요타 또한 적극 가세할 만큼 EV 시장의 체급이 올라갔다”며 “해당 분석의 배경에는 그간 배터리 셀부터 완성차까지 EV 가치 사슬을 구축해왔던 토요타의 전략이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올라섰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토요타의 EV 적극 가세는 한국 기업에게도 장단점이 분명하다. 먼저 제품 증가에 따른 소비자들의 시선이 EV로 모아지는 효과가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현대차를 포함한 한국 기업 또한 EV 제품 구성을 강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반면 토요타의 가세는 그만큼 경쟁이 더욱 격화됨을 의미한다. 특히 토요타그룹과 현대차그룹 간의 EV 직접 경쟁의 점화는 ICE를 포함한 전체 글로벌 판매 순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시선이 쏠린다.
아직은 토요타그룹이 현대차그룹 대비 연간 300만대 가량 앞서가지만 EV 시장 변화를 고려할 때 현대차그룹 또한 글로벌 판매 1위를 충분히 노려볼 수 있어서다. 물론 5년 만에 400만대를 달성한 중국의 BYD 등도 신경이 쓰이지만 BEV가 ICE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대차그룹의 선도적인 EV 전환이 토요타그룹에 긴장을 불어넣었음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토요타의 EV 가세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판도 변화가 본격 시작됨을 의미한다. 바로 EV 시장의 패권 싸움 말이다.
박재용(공학박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