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없는 서킷, 몰입만을 위한 공간 구성
-라운지만 5개, 각종 편의시설까지 갖춰
-철저한 프라이빗 운영, 한국인도 5명 가입
일본 치바현 최남단의 산맥을 넘어가자 삼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 나온다. 이 사이를 비집고 달리다 보니 고요한 숲 너머로 회색 선이 드러났다. 세계 최고의 프라이빗 서킷, 마가리가와 클럽이다. 완공까지 3년. 멤버십만으로 운영하는 철저한 폐쇄형 시스템, 총 5개의 라운지를 갖춘 이곳은 가장 비밀스럽고도 완벽한 구조로 나만의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마가리가와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트랙 스펙이나 설계 디테일 때문만은 아니다. '운전'이라는 행위를 하나의 문화로 승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렇다보니 트랙이지만 단 한 명의 관중도, 객석도 없다. 오직 단 몇 대의 차만을 위한 트랙으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할 뿐이다.
트랙 설계는 세계적인 F1 서킷 디자이너 헤르만 틸케가 맡았다. 우리나라의 코리아 인터네셔널 서킷,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는 물론 야스 마리나, 상하이, 바레인 등 세계적인 F1 트랙을 설계한 인물이다. 재미있는건 그가 마가리가와를 설계하면서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마가리가와는 레이스가 열리지 않는 서킷이다. 돌려 말하자면 '경쟁' 이라는 키워드가 배제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렇다보니 순수한 운전의 몰입감만을 위한 설계가 눈길을 끈다. 오버테이크를 위한 라인은 없고, 트랙 폭도 의외로 일정치 않다.
총 길이 약 3.5㎞에 달하는 트랙은 고저차가 극심하다. 코너는 비대칭적으로 이어진다. 설계자는 자연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이를 활용해 다양한 변속 타이밍과 제동 포인트들을 만들어냈다. 이렇다보니 주행 때 마다 전혀 다른 리듬으로 운전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백미는 '골든 라인' 이라 불리는 연속 와인딩 구간. 고속 주행과 리듬감, 시야 확보와 균형을 극한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피트 직전 마주하는 오르막 블라인드 코너는 하늘을 향해 달려나가는 느낌을 주고, 후행 차를 운전하는 이들은 하늘과 맞닿은 선행 차의 아름다운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피트 구성도 특별하다. 정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애쓰는 또 다른 치열한 경쟁의 장인 일반적인 레이싱 트랙의 피트와는 전혀 딴판.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이 마련되어있고 간단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라운지에 가까워서다. 이들에게 피트는 차를 점검하고 다음 랩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곳이 아닌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에 가깝다.
이 외에도 클럽은 다섯 개의 독립 라운지를 갖추고 있다. 각 라운지는 전용 주차공간과 라커, 라운지, 갤러리룸, 미팅공간으로 구성돼 있고, 일부는 숙박도 가능하다. 라운지 안에서는 미세한 진동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정제된 정적이 흐른다. 벽면에는 아티스트들의 한정 작품이 걸려 있고, 자연광을 가공한 듯한 간접 조명은 시간마저 조용하게 흐르게 만든다. 라운지 창 너머로는 코너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클럽 내부에는 서킷 외에도 체력 단련 공간, 식음 서비스, 가족 동반객을 위한 키즈룸과 테라피 시설까지 마련돼 있다. 일부 회원들은 이곳을 도심 바깥의 ‘두 번째 집’처럼 사용하며 트랙에서의 주행을 하루의 루틴으로 삼는다. 드라이빙이 이곳에선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스며들 수 있는 이유다.
흥미로운 것은 클럽의 브리핑 룸조차 완벽하게 ‘소리’로부터 격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조용히 오늘의 주행 스케줄이 흘러가고, 별도의 오디오 없이 안내 메시지는 텍스트로 반복된다.
마가리가와 클럽은 폐쇄형 멤버십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평생 멤버십은 이미 모두 마감됐으며 현재는 연 단위로 이용 가능한 어소시에이트 멤버십만 운영 중이다. 이마저도 300명으로 한정돼 있다. 전체 회원 중 약 20%는 해외 거주자이며, 5명의 한국인도 포함돼 있다. 회원들의 연령대도 20대부터 80대까지로 폭넓다.
아무도 달리지 않는 트랙은 고요했지만 그 자체로 이곳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프라이빗 서킷이라는 수식이 이곳에 어울리는 건, 결국 그 조용한 감각의 총합 때문일 것이다.
일본(치바)=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