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기업, 전동화 전환에 필요한 시간 확보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내놓은 올해 1~5월 글로벌 전기차 판매 동향이 흥미롭다. 5월까지 글로벌 BEV 판매는 502만대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4.5% 증가했다. 여기저기 캐즘을 운운하지만 결국 해당 분석이 틀렸음을 숫자는 방증한다. 물론 일부에선 502만대에서 319만대를 차지한 중국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경우도 183만대로 전년 대비 20% 늘었다. 그리고 183만대의 대부분은 유럽(95만대)과 미국(50만대), 기타(28만대) 국가로 분류된다. 여기서 기타 국가란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동남아, 남미 등이다.
한국은 올해 5월까지 7만3,000대가 판매돼 전년 대비 45.9% 증가했다. 제품 종류가 늘어나고 보급형이 등장해 나타난 결과다. 반면 일본은 3만9,000대로 10.3% 감소했다. 이런 차이에 대해 협회는 몇 가지 분석을 더한다. 일본은 보조금 체계가 복잡한 데다 HEV 선호도가 매우 강력하다는 점을 꼽는다. 반면 한국은 다양한 BEV 제품 추가와 이용 편의성 향상이 제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BEV가 증가한 대부분 나라의 공통점이다. 먼저 유럽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빠르게 전동화 길에 들어서려 한다. 하지만 제조사마다 내연기관 산업의 붕괴를 내세워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게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BEV 판매는 해마다 늘어나는 중이다. 동시에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는 내연기관 대체재로 BEV 산업을 적극 육성하려 한다. 자동차 부문의 새로운 강자가 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약하는 모습이다. 오랜 시간 유럽과 미국, 한국, 일본 등이 주도했던 내연기관 의존도를 낮추되 BEV 전환으로 자동차산업의 미래 주도권 싸움에 참여하는 게 목표다. 한 마디로 자동차 독립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내연기관 회귀를 선택했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전환을 위한 시간 벌기에 나선 것뿐이다. 쉽게 보면 미국 또한 BEV로 바꾸는데 시장 규모를 활용해 경쟁에서 뒤지지 않겠다는 의도다. 연간 1,700만대의 자동차 시장을 걸어 잠그고 미국 내 자동차 기업의 전동화에 필요한 자금과 시간 마련의 성격이 짙다. 관세로 가격이 오르고 제품 종류 축소로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외형적으로는 내연기관 집중이지만 궁극은 BEV도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이 미국과 펼치는 자동차 부문 관세 협상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이제야 전동화를 본격 준비하는 미국 자동차 기업을 지원하는 것에 뿌리를 둔다. 미국 기업들이 전동화에 필요한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내연기관 시간을 연장시키되 오직 미국 생산 기업만이 대상이다. 부품 관세를 부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BEV 생산에 필요한 모든 가치 사슬을 미국 내에 구축하는데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자동차를 겨냥한 미국에 대응할 마땅한 카드는 별로 없다. 있다면 미국에서 부품과 완성차 생산을 늘리는 것뿐이다. 이 경우 국내 생산은 당연히 줄고 일자리도 감소한다. 협력업체 등을 포함하면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날 수 있다. 반면 미국 내에선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증가한다. 한국의 소득이 미국으로 건너가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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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돌파구가 있다면 한국과 미국 자동차 기업의 적극적인 협력이다. 예를 들어 미국 GM이 현대차를 생산하고, 현대차 한국 공장이 GM 제품을 교차 생산해 서로의 일자리를 일부 지키는 방식이다. 예전 같으면 생산 품질 논란이 벌어지겠지만 과거와 달리 완성차공장의 자동화로 요즘은 조립 품질 차이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실현 불가능한 얘기지만 서로 필요한 차종의 생산을 맡기면 관세 장벽을 일부 피해 나갈 수 있다. 생산을 지킬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옵션을 검토하는 게 최선이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