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 과거와 현재의 이중주, 벤틀리 컨티넨탈 GT 스피드

입력 2025년08월22일 08시1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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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은 전기로, 고속도로는 V8로
 -1920년대 벤틀리 보이즈의 자유 느껴

 

 평일 아침, 서울을 빠져나와 양양으로 향하는 길. 수도권의 혼잡한 신호등과 교차로를 벗어나자, 동쪽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전기 모드로 미끄러지듯 달리던 차는 조용히 도심을 떠났고, 순간 마치 한 세기 전의 벤틀리 보이즈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1920년대 런던에서 르망으로 달려갔던 젊은 레이서들처럼 오늘 이 차와 함께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디자인&상품성
 새로운 GT 스피드는 외관에서부터 강렬하다. 전면부는 20년 만의 대대적인 변화다. 1950년대 이후 처음으로 단일 헤드램프가 적용됐는데 보석을 세공한 듯한 크리스털 컷 디테일과 120개의 LED는 단순한 조명 그 이상이다. 도심의 햇살 아래선 유리 조각처럼 빛났고 터널을 빠져나와 어둠이 걷히자 은은하고 깊이 있는 빛으로 도로를 채웠다. 긴 보닛 라인과 매끈한 차체 표면은 마치 고요히 웅크린 맹수를 연상케 했다.

 






 

 측면부는 그랜드 투어러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루프 라인은 부드럽게 떨어지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고 볼륨감 있는 뒷펜더는 차체가 땅을 움켜쥔 듯한 안정감을 전한다. 새롭게 디자인된 22인치 휠은 날카로운 발톱처럼 아스팔트를 움켜쥐며, 고속도로의 리듬을 따라 힘차게 구른다.

 

 후면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대담해졌다. 입체적으로 돌출된 테일램프는 불덩이가 흘러내리는 듯한 용암의 시각적 효과를 주고, 넓게 뻗은 그래픽은 차체의 위용을 배가시킨다. 트렁크 리드에 적용된 에어로다이내믹 설계는 별도의 스포일러 없이도 다운포스를 만들어냈다. 긴 여정을 달리며 고속 주행에서도 차체가 흔들림 없이 노면에 달라붙는 이유였다.

 



 

 실내는 한마디로 궁극의 수공예 공간이다. 3D 가죽 퀼팅과 다크 크롬 피니시는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동시에 담았고, 20방향으로 조절되는 시트는 장거리 주행에서도 피로를 최소화했다. 웰니스 시트 기능은 자동으로 자세를 교정하고 체온을 조절해 서울에서 양양까지 3시간에 가까운 주행에서도 허리가 뻐근해지지 않았다. 여기에 회전식 12.3인치 디스플레이를 조작해 네임 오디오로 원하는 음악을 들으니 정말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순간이다. 

 

 ▲성능
 컨티넨탈 GT 스피드의 심장은 벤틀리 최초의 울트라 퍼포먼스 하이브리드다. 4.0ℓ V8 엔진과 190마력 전기 모터가 합쳐져 합산 최고출력 782마력, 최대토크 102.0㎏∙m를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3.2초, 최고속도는 335㎞/h. 수치만으로도 가장 강력한 벤틀리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서울 도심을 빠져나올 때는 전기 모드로 달렸다. 190마력 전기 모터만으로도 시속 140㎞까지 거뜬히 도달할 수 있어 도심 주행에는 충분 그 이상이다. 강변북로에 오르자, 차 안은 바람 소리조차 차단된 채 고요만이 흐른다. 엔진이 꺼진 채 전기만으로 나아가는 순간 럭셔리 브랜드에 요구되는 정숙함과 편안함을 모두 누릴 수 있다. 전기모드 주행 가능 거리는 국내 인증 기준 64㎞.

 

 그러다 고속도로로 진입하며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았다. 잠자던 V8 엔진이 마치 천둥 소리와 같은 굉음과 깨어난다. 4.0ℓ V8 트윈터보 엔진이 내뿜는 출력은 600마력 여기에 전기 모터가 보태져 총 시스템 출력은 782마력에 달한다. 터보랙은 전기모터가 완전히 지워내고 페달을 밟자마자 활처럼 튀어나간다.

 


 

 동해를 향한 긴 직선 구간에서 컨티넨탈 GT 스피드는 본색을 드러냈다. 최고속도는 335㎞/h까지 도달할 수 있고 탄력 주행 중에도 폭발적인 힘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듀얼 밸브 댐퍼와 이중 챔버 에어 스프링, 48V 액티브 안티롤 시스템은 차체를 단단히 잡아주고, 49:51의 후륜 중심 무게 배분은 코너에서 더욱 민첩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연속되는 고속 커브에서도 차체는 끝내 흐트러지지 않았고, 드라이버의 스티어링 입력에 맞춰 노면을 움켜쥐듯 따라붙었다.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뒷바퀴가 살짝 미끄러지며 드라이버가 원하는 만큼의 역동성을 허용하는데 이는 이전 세대와 확실히 다른 영역이다.

 


 

 브레이크 역시 성능을 뒷받침한다. 10피스톤 캘리퍼와 440㎜ 카본-세라믹 디스크를 적용한 제동력은 강력하면서도 매끄럽다. 긴 하행선에서 고속 주행 중 브레이크 페달에 힘을 줘도 차체는 흔들림 없이 바닥에 꽂히듯 멈춰선다.

 

 ▲총평
 양양 앞바다에 차를 세우고 긴 여정을 돌아보니 문득 다시금 벤틀리 보이즈가 떠올랐다. 100년 전 젊은 부호와 레이서들이 벤틀리를 몰고 유럽의 도로와 르망을 질주하며 느꼈을 자유와 모험, 그리고 자부심. 오늘 서울에서 양양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그 감각을 조금이나마 맛본 듯하다.

 


 

 벤틀리 컨티넨탈 GT 스피드는 단순한 고성능 럭셔리 쿠페가 아니다. 도심에서는 전기로 고요히, 고속도로에서는 V8의 힘으로 폭발하듯 달리며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궁극의 그랜드 투어러라는 정체성을 증명한다. 전통과 혁신이 한 차 안에서 교차하는 이 경험은 마치 오늘날의 우리를 현대판 벤틀리 보이즈로 초대한 듯한 여운을 남겼다.

 

 양양=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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