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중고차, '단순 수리'라는 면죄부와 '무사고'라는 착시

입력 2025년08월27일 09시15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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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적 ‘무사고’와 소비자 인식의 깊은 괴리
 -‘완전 무사고’..시장이 만든 기형적 표현
 -‘직영’ 간판, 신뢰일까 착시일까

 

 첫 차로 중고차를 구입했을 때의 기억은 지금 떠올려도 아프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했던가. 자동차 시장을 취재도 하는 게 직업인데도 막상 내 일이 되니 판단은 흐려졌다. ‘무사고차’라고 고지 받았지만 차의 외판 도색 곳곳이 달랐고 성능점검기록부상 이상이 없다고 표기된 차였음에도 작동하지 않는 기능들이 몇 있었다. 서류는 멀쩡했고 판매자는 법적 기준에 맞는 고지를 했다고 했지만, 그 차를 매일 타야 하는 건 결국 나였다.

 


 

 그 때 깨달았다. 중고차 시장의 문제는 단순히 '정보가 없다'가 아니다. 오히려 정보는 넘친다. 성능 기록부, 보험 이력, 진단 리포트, 정비 내역까지.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이전보다 훨씬 많다. 정작 문제는 그 정보가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게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류는 그럴듯하지만 표기 기준은 업계의 편의대로 정해져 있고, 설명은 법적 하자 여부를 벗어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단순수리'와 '무사고' 라는 표기다. 업계 관행 상 프레임 손상이나 절단이 없다면 수리비가 1,000만원을 넘어도 '단순수리'로 분류된다. 외판을 여러 차례 갈았어도 골격이 멀쩡하면 수 차례 보험 처리를 했더라도 중고차 시장에서는 '무사고차'로 판매될 수 있다는 뜻이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별지 제 82호 서식은 "사고이력 인정은 사고로 자동차 주요 골격 부위의 판금, 용접수리 및 교환이 있는 경우로 한정합니다. 단, 쿼터패널, 루프패널, 사이드실패널 부위는 절단, 용접 시에만 사고로 표기합니다"라고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나는 '경미한 수리'나 '사고 없음'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결국 중고차 시장에서는 '완전 무사고' 같은 기괴한 비표준 용어까지 통용되고 있다. 문법적으로 어색한 이 같은 표현까지 쓰이게 된 건 그만큼 기존의 '무사고' 라는 단어가 신뢰를 잃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직영 중고차를 표방하는 케이카에서 확인한 매물들도 이 같은 문제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2,070만원에 등록된 독일 M사의 E 차종은 '단순수리'로 표기되어있지만 보험 이력 상 내 차 피해만 4건, 비용은 889만원에 이른다. 법적 기준으로는 단순 수리지만 2,000만원짜리 차에 900만원에 가까운 수리비가 잡혀 있다는 걸 보고 '경미한 수리'라고 이해할 소비자는 적을 테다. 

 

 1,690만원에 판매하고 있는 B사의 3 매물은 교환이나 판금 이력이 없어 '무사고'로 분류됐지만 보험 이력에는 내차 피해 3건, 총 421만원과 상대차 피해 1건, 114만원이 잡혀있다. 소비자는 이 차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소개란에는 단순히 '무사고차' 라는 한 줄 표기만 있을 뿐이다. 2,480만원에 올라온 또다른 B사의 3 차종은 외관상 도어 2곳 교환으로 '단순 수리' 판정을 받은 차지만 수리비 총액은 1,066만원. 

 


 

 이 세 가지 사례는 소비자가 던질 질문을 명확하게 만든다. 단순 수리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다. 법적 정의상 단순 수리는 프레임 손상이 없고, 판금·교환이 외판에 국한된 경우지만 차값의 절반에 가까운 비용을 수리비로 썼고 보험 처리 건수가 여러 건이라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단순하다' 라는 말이 오히려 불신을 부르는 결과가 된다. 

 

 또 다른 질문은 무사고인데 왜 보험 이력이 이렇게 많냐는 것. 골격이 멀쩡하면 무사고로 분류되지만 소비자가 무사고를 기대하며 떠올리는 이미지는 보험 처리 한 번 없는 깨끗한 차다. 이 괴리를 메우기 위해 등장한 ‘완전 무사고’라는 어색한 단어는 이미 ‘무사고’라는 말이 신뢰를 잃었음을 보여준다.

 

 케이카는 직영 중고차 플랫폼을 표방하며 전국망과 자체 진단 시스템, 환불 제도 등을 앞세워 신뢰를 쌓아왔다. '직영' 이라는 단어에서 제조사 인증 수준의 투명성과 품질 보증을 기대해온 소비자는 여기에 응답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사례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든다. 법적 표기 기준 안에서 최소한의 고지만을 하고 있을 뿐 차 상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직영’이라는 간판이 곧 ‘안심 거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케이카도 이럴진대 정보가 더욱 불투명한 오프라인 중고차 시장은 어떨까. 온라인 플랫폼은 그나마 보험 이력과 성능기록부를 한 화면에서 제공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자료조차 제때, 정확히 제시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성능기록부는 있으나마나한 수준으로 채워지고, 보험 이력은 일부만 알려주거나 ‘무사고’ 라는 말 한마디로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는 경우가 허다할 테다.

 


 

 이런 정보를 알지 못한 채, 혹은 알아도 해석할 능력이 없어, ‘무사고’라는 말만 믿고 차를 사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차를 받고 난 뒤에야 수백만 원짜리 보험 수리 이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미 늦어 되팔려고 하면 더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다. 결국 시장의 불투명성과 표기 기준의 괴리가 소비자의 피해로 직결되는 구조다.

 

 정부도 이와 관련한 부분을 살피고 있다. 국토교통부 모빌리티자동차국 자동차운영보험과는 해당 문제에 대한 서면 질의에 "무사고차와 소비자가 인식하고 있는 무사고의 차이가 발생해 소비자 혼선을 겪을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중고자동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의 단계적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중고차 거래에서 가장 큰 가치는 신뢰다. ‘직영’이든, ‘인증’이든, ‘무사고’든 이 단어들이 신뢰의 언어로 남으려면 법적 최소 기준만 맞추는 고지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과 투명한 정보 공개가 먼저다. 그렇지 않다면 조 단위의 매출을 기록하는 기업형 중고차 업체여도 결국 동네 매매상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인식에 휩싸일지 모른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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