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찬 공간 활용 능력, EV9 연상케해
-가족을 위한 배려, 패밀리 SUV로서의 미덕 갖춰
-무난한 주행감각과 뛰어난 안전기술, 가족용으로 합격
EV5에서 EV9이 떠올랐다. 분명 신차고 더 작은차인데 곳곳에서 EV9의 감각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공간감과 활용성은 한 단계 아래급 차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만큼 다재다능하다. 생각해보니 덩치는 줄었지만 가족을 위한 SUV라는 본질만큼은 EV9과 같은 결을 이어가고 있다.
▲디자인&상품성
전면부만 봐도 한 눈에 기아의 정통 SUV와 같은 실루엣을 드러낸다. EV9, 쏘렌토, 스포티지와 마찬가지로 수직으로 곧게 세운 LED 헤드램프와 스타맵 시그니처 주간 주행등이 당당하게 자리잡아있다. 넓게 뻗은 보닛과 범퍼 하단의 스키드 플레이트도 영락없는 SUV의 감각을 키워주는 요소다.
측면으로 시선을 돌리면 EV5의 설계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루프 라인은 매끈하게 떨어지면서도 D필러를 곧게 세워 뒷좌석 공간감을 강조했고 사각형 펜더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표현한다. 전장 4,610㎜, 전폭 1,875㎜라는 수치는 준중형 SUV의 영역에 속하지만 유독 긴 휠베이스 덕분에 실제로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은 중형 SUV에 가까울 만큼 크다.
후면부는 정갈하면서도 힘 있는 마무리로 완성됐다. 수평과 수직의 조화를 이룬 리어콤비 램프는 차체를 한층 넓어 보이게 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테일게이트 라인은 패밀리 SUV의 실용성을 표현하면서도 플래그십 SUV의 기품을 따라가고자 애썼다. 여기에 GT라인 트림에서는 블랙 디테일과 전용 휠이 더해져 더욱 스포티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살아난다.
실내에 들어서면 공간 활용성에서 EV9을 닮았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진다. 전폭과 전장이 확보해 준 여유 덕분에 2열 레그룸은 1,041㎜에 달한다. 성인이 앉아도 넉넉하고 시트를 풀플랫으로 접으면 트렁크와 연결돼 차박까지 무리 없다. 기본 적재 공간은 965ℓ로 실생활에 충분하고 프렁크와 측면 수납공간, 기아 애드기어까지 더해져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단순히 넓기만 한 것이 아니다. 크래시패드를 가로지르는 라인이 입체적인 공간감을 만들고, 12.3인치 클러스터와 인포테인먼트, 5인치 공조 화면을 통합한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가 전면부를 시원하게 채운다. 1열에는 릴렉션 컴포트 시트와 에르고 모션 시트가 준비돼 있고 2열에는 슬라이딩 확장형 센터콘솔, 시트백 테이블, 3존 독립 공조 시스템이 더해졌다. 파노라마 선루프까지 열어젖히면, 작은 차체 안에서도 대형 SUV의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EV5만의 장점은 ‘넓은 공간을 어떻게 쓰게 해주느냐’에 있다. 2열 시트를 접어 트렁크와 연결하면 차박이나 아웃도어 활동에서 간이 침실로 변하고 러기지 보드와 측면 수납공간은 크고 작은 짐을 깔끔히 정리할 수 있게 돕는다. 전면부 프렁크는 충전 케이블이나 캠핑 장비를 보관하기에 적합하며 애드기어 시스템은 러기지 공간을 모듈처럼 확장해 단순한 짐칸을 ‘다용도 도구함’으로 만들어준다. 실내에서는 시트백 테이블과 슬라이딩 콘솔이 간단한 식사 자리나 작업대로 변신해 EV5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생활 공간이 되게 한다.
▲성능
EV5는 최고출력 160㎾(약 217마력) 전륜 모터와 81.4㎾h NCM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최장 460㎞를 달릴 수 있다. 350㎾급 초급속 충전기를 이용하면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약 30분 만에 충전이 가능하다.
주행 질감은 탄탄함과 편안함이 절묘하게 공존한다. 단단하지도 지나치게 무르지도 않은 균형 잡힌 세팅이다. 현장에서 “무난하다”는 평이 자주 들려왔는데 다양한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패밀리 SUV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성격이 오히려 장점이다. EV9에서도 강조됐던 ‘누구나 편안하게 탈 수 있는 주행 감각’이 EV5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노면 충격을 거르는 능력도 준수하다. 요철이나 굴곡진 노면을 지나도 불필요한 떨림 없이 깔끔하게 충격을 처리한다. 서스펜션 스트로크는 길게 세팅된 듯하지만 수축과 복원 과정이 빠르고 자연스러워 차체가 곧바로 자세를 고쳐 잡는다. 동승자 입장에서도 불안감 없이 안락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다. EV9과 마찬가지로, 큰 차 특유의 묵직한 안정감보다는 패밀리 SUV로서의 안락함에 포커스를 맞췄다.
핸들링 역시 무난함에 초점을 맞췄다. 예리하게 반응하는 맛은 덜하지만 그렇다고 느슨하지도 않다. 과도한 긴장감 없이 일상 주행에서 부담 없는 반응을 보여주며 운전 피로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세팅됐다. 가족과 함께하는 이동이 많은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접근이다.
안전 보조 기능 중에는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가 특히 눈길을 끈다. 정차 상태에서 출발할 때 전·후방에 차량이나 벽이 있으면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와 혼동해 밟았을 경우 경고 메시지와 경고음을 통해 운전자에게 즉각적으로 알리는 기술이다. 동시에 가속 제한과 제동 제어가 이뤄져 돌발 사고를 예방한다. 제한된 환경에서 급가속을 시도했을 때 시스템이 개입하는 모습은 운전자에게 신뢰감을 줬다. 안전성을 고려하면 OTA를 통해 다른 기아 전기차에도 확대 적용되길 기대할 만하다.
주행 사운드도 만족스럽다. 정속 주행이나 감속 시에는 불필요하게 요란하지 않지만 가속 페달을 깊게 밟을 때 은은한 전기차 특화음이 들려온다. 단순히 ‘운전 재미’를 부각하는 효과음이라기보다는, 지금 가속하고 있다는 청각적 피드백을 제공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덕분에 과장되지 않고 절제된 방식으로 운전 몰입도를 높인다.
다만 시트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쿠션감 자체는 충분히 좋아 장시간 주행에서도 피로를 줄여주지만 몸을 단단히 지지해주는 느낌이 부족하다. 코너링이나 급가속 상황에서는 허리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이 남는다. EV9과 달리 EV5는 대중성을 강조한 만큼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지만 최소한 GT 라인이나 향후 출시될 고성능 GT에서는 보다 두툼하고 몸을 감싸는 시트가 적용된다면 주행 완성도가 한층 높아지겠다.
▲총평
EV5는 크기를 줄였지만 본질은 그대로였다. 곳곳에서 EV9의 철학과 감각이 묻어나고 공간 활용성과 안락한 주행 질감은 한 단계 아래급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덩치를 줄여 더 많은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합리적인 패밀리 SUV라는 느낌이라면 비약일까. 어쨌건 EV5는 전기차이기에 앞서 SUV로서도 여러모로 잘 만들어진 차다.
EV5의 가격은 4,885~5,340만원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