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2025 아이디어 페스티벌 열어
-보안·이동성·일상 속 불편 등 주제도 다양
지난 22일 현대자동차그룹 남양연구소. 연구동 앞 도로가 별안간 축제의 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푸드트럭에서 제공되는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즐기며 캐주얼한 복장으로 모인 연구원들은 기대와 설렘, 긴장감이 공존한 모습. '2025 아이디어 페스티벌' 본선 현장의 분위기는 이 날의 날씨만큼 쾌청했다.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본부와 AVP본부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단순한 아이디어 공모전이 아니다. 연구원들이 직접 기획하고, 설계하고, 7개월간 실제로 제작한 결과물을 시연하는 ‘창의의 실험장’이다. 올해로 16회를 맞은 이번 행사는 글로벌 챌린저를 주제로 전 세계 무대에서 쌓은 기술적 입지를 바탕으로 미래 모빌리티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했다.
올해는 예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엔진·섀시 등 기계적 장치의 개선 아이디어가 주를 이루던 과거와 달리 소프트웨어와 사용자 경험 중심의 출품작이 크게 늘었다. 차의 인터페이스, 데이터 활용, 연결성 등 ‘보이지 않는 기술’이 무대의 전면으로 올라온 것. 단순히 하드웨어 성능 향상을 넘어 모빌리티 산업이 서비스와 감성의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본선 무대에는 총 6개 팀이 올랐다. 각 팀은 연구 현장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으로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연구개발본부 임직원은 물론 역대 수상자들이 심사위원을 맡았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대상팀에게는 상금 1,000만원과 2026 CES 견학 기회, 최우수상팀에는 상금 500만 원과 싱가포르 HMGICS(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 탐방 기회가 주어진다.
FMV팀은 차 수납공간을 잠금 해제할 수 있는 디지 로그 락 시스템을 공개했다. 제네시스 내장 설계와 인포테인먼트 개발팀이 협업해 구현한 이 시스템은 아날로그 감성과 스마트 보안을 결합했다. 센터 콘솔 다이얼을 이용해 패턴을 입력하면 글로브박스가 열린다. 지문 등록이나 대형 디스플레이 조작 없이, 손끝의 감각만으로 잠금이 해제되는 셈이다.
수퍼트레일러토잉팀의 트레일러 토잉 프리 컨디셔닝은 열관리 시스템을 혁신했다. 트레일러 견인 시 냉각 기능을 선제적으로 작동시켜 견인 가능 중량을 1,500㎏에서 1,800㎏으로 높였다. 별도의 부품 추가가 없고 원가 상승 없이 성능을 향상시킨 점이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데시벨 팀은 안전벨트를 새로운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바꿔놓았다. 벨트 위의 버튼을 눌러 오디오 볼륨이나 트랙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임산부나 노약자, 거동이 불편한 승객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버튼은 탈착식으로 꾸미거나 교체할 수 있다.
앤트랩은 기술적 실험의 정점을 보여줬다. 전 방향 주행이 가능한 액티브 옴니 내비게이션 트랜스포터는 휠 내부 기어와 도넛형 타이어를 결합해 어떤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모빌리티다. 좁은 공간에서도 회전이 자유롭고 여러 대가 도킹해 협업 운송을 수행할 수도 있다. “개미(Ant)처럼 연결된 모빌리티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우근 연구원의 말처럼 그들의 상상은 이미 미래에 닿아 있었다.
흰수염고래팀은 기술에 온기를 입혔다. 발달 장애인의 불안 증세를 완화하는 차량용 패드 ‘S.B.S(Seat & Belt with Stability)’는 시트와 벨트에 내장된 에어포켓과 발열 필름으로 사용자를 감싸 안는다. “운전 중 함께할 수 없는 가족을 대신해 따뜻하게 안아주는 기술이 되길 바랐습니다.” 팀의 이름 ‘흰수염고래’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위로하는 존재’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로보틱스 연구원들로 구성된 ART팀의 스냅플레이트는 일상 속 불편을 정면으로 다뤘다. 주차 차량의 차주에게 연락이 필요할 때, 번호판을 촬영하면 자동으로 안심번호로 연결되는 시스템이다. 전화번호 노출 없이 연락이 가능하며 시간대별 차단 기능과 사용자 지정 옵션도 제공한다. 연구원들은 “남양연구소 소속 연구원분들에 한해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라며 "테스트카 등 연락처를 남겨두기 곤란한 차의 경우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해 연구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날 대상은 앤트랩이 수상했다. 최우수상은 FMV, 수퍼트레일러토잉 등이 뽑혔고 우수상은 아트, 데시벨, 흰수염고래 등 세 팀이 차지했다.
연구원들은 너나할것없이 모두를 격려했다. 지난해 아이디어 페스티벌에 참여했다고 밝힌 한 연구원은 "현업을 하면서 아이디어 페스티벌을 준비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직접 참여해봤기에 얼마나 힘든 과정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그룹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단순한 사내 경진대회를 넘어 차세대 신기술을 만나볼 수 있는 무대로도 주목받고 있다. 2021년 공개된 '다기능 콘솔'은 현대차 싼타페의 양방향 멀티 콘솔로 양산됐다. 2023년 선보인 데이지는 시각장애인의 버스 탑승을 돕는 실증 기술로도 발전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