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시장의 핵심 국가
“BMW와 벤츠도 태국에서 CKD 생산을 합니다.” 현대차 태국 관계자의 첫 마디다. 그만큼 태국은 동남아 시장의 완성차 생산 중심지이자 소득이 점차 증가하는 나라다. 심지어 테슬라도 RHD 방식을 판매한다. 흥미로운 점은 태국의 자동차 소비 문화다. 1인당 소득이 한국보다 5배 낮은 7,400달러 가량이지만 휘발유 및 수송 부문의 전기 에너지 가격은 한국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자동차를 소유하려는 욕망의 크기는 같다. 그리고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최대한의 경제적 접근이다. 구매 부담 장벽을 운행 비용 절감으로 극복하려 한다. 결국 소득 대비 비싼 자동차 구입 문화는 자연스럽게 고효율 관심을 고취시켰고 일본 경쟁사들은 일찌감치 HEV를 쏟아내며 시장의 적응도를 높여놨다. 그리고 이제는 중국 기업이 BEV 중심으로 판을 뒤집으려 한다.
일본보다 훨씬 늦게 진출한 현대차가 우선한 것은 시장의 흐름 간파다. 그리고 어느 한쪽만을 겨냥하지 않는 전략을 취했다. 태국 시내 중심에 자리 잡은 아이오닉 랩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누구나 들어와 E-GMP 플랫폼의 완성도를 직접 경험하고 원하면 신차 출고도 같이 한다. 물론 플래그십 브랜드 스토어는 토요타와 BYD도 보유했지만 아이오닉 랩과 다른 점은 스토리의 구성이다. 지나치게 제품 및 브랜드를 내보이는 것과 달리 아이오닉 랩은 하이테크 스토리가 분명 존재한다. 쉼 없이 플랫폼을 움직이는 로봇 팔을 보고만 있어도 첨단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지난달 28일 방문해 만난 태국 내 현대차 관계자는 “시장의 도전자로서 새로운 자동차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이야기를 담는 게 중요하다”며 “하이테크 면모를 강조해 현대차가 지속적으로 내세우는 인간중심의 기술을 보여주는 중”이라고 강조한다. 일본과 중국을 모두 견제해야 한다면 자동차의 모든 기술을 갖춘 완벽한 브랜드임이 현대차라는 점을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과정이 곧 브랜드 차별화라는 뜻이다.
일종의 스토리 전개를 만들게 된 계기는 태국의 역사 및 문화와 관련이 깊다. 태국은 동남아 내 강력한 불교국가로 자존심이 강하고 국왕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중요시 하는 곳이다. 실제 현대차 태국 관계자가 들려준 얘기는 자동차 소비 자체가 역사적 맥락과 닿아 있음을 보여 준다. 먼저 태국은 주변 국들과 달리 일찌감치 자동차산업을 생산 중심으로 발전시켜 자동차에 대한 국민들의 자부심이 비교적 높다.
비록 태국 자체 브랜드는 없지만 생산 초기부터 진출한 곳이 일본 기업이어서 일본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 오히려 현지 생산 제품을 국산으로 여기기도 한다. 반면 중국은 BEV 이전 내연기관을 먼저 들여와 실패한 경험이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 BEV 제품에 대해선 의심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BEV 이전 내연기관이 태국에 진출했다가 품질 문제로 큰 곤혹을 치렀고 이후 이미지 회복은 아직 더딘 상황”이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한국에겐 오히려 기회라는 게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다. 불교 중심의 문화는 상대적으로 기술에 대한 관심을 덜 갖게 만들었지만 최근 젊은 디지털 소비층은 기본적인 기술 이해도가 높아 제품력을 강조할 때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IT와 첨단 기술에 익숙한 젊은 소비층이 자동차에 대한 시각 자체를 달리한다는 것. 이런 변화는 미래적 관점으로 접근하려는 한국차, 특히 현대차에 있어 유리한 조건으로 여겨진다. 현대차 관계자는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는 태국 정부의 정책과 높아지는 젊은 소비층의 관심이 접목된 점을 주목해 현지 과학기술 중심 대학과 다양한 협업을 시도하려 한다”며 “도전자 관점에서 전반적인 사회 문화 트렌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현대차가 사회적 변화에 적극 대응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소비자와의 우호적 관계 형성이 자리한다. 관련해 정재규 현대차 태국 법인장(사진)이 들려준 얘기는 흥미롭다. 그는 “동남아는 서양과 소비 패턴이 다르다”는 말로 운을 뗀다. 미국하고 유럽은 합리적인 소비 패턴을 보이는 만큼 소비자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공급하면 되지만 태국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는 합리적 소비 이전에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젊은 소비층이 한국 문화를 동경하는 것과 한국 브랜드의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은 관계적 측면에서 조금 다르다는 뜻이다. 그는 “한번 차를 구입하면 최소 10년 동안 자신과 제품을 공급한 브랜드와 관계를 맺는 것인데 해당 브랜드 제품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를 당연히 구입 전에 고민한다”며 “이 점을 파고들어 현대차는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을 다양화하려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오랜 시간 일본 자동차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그물망 네트워크와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관계 형성에 집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동남아의 자동차 핵심 국가 태국은 현재 변하는 중이다.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자동차는 아직 일본의 기반이 두텁다. 하지만 기술 수용성이 높은 소비자가 많아진다는 점을 포착한 한국차, 특히 현대차는 빠른 대응으로 자동차 문화 기반 전환에 도전하려 한다. 물론 도전의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확인된다. 현대차 관계자가 남긴 한 마디는 여전히 울림을 이어간다. “한국의 장점은 어려움을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극복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도전한 것 자체가 어쩌면 한국인의 DNA가 아닐까요? 우리는 해낼 겁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시계의 추가 한국에 기울어져 있음을 느낀 대목이다.
방콕=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