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 본격 서막 올려
지난달 29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중심에 우뚝 서 있는 현대-탄콩 합자법인 산하, 딜러 전시장을 방문했다.
지금은 위상이 달라졌지만 한국차가 처음 베트남에 들어간 시기는 1990년대 초반 중고차부터 시작됐다. 1994년 해외로 수출된 중고차의 절반 가량이 베트남으로 흘러 들었다. 주변국과 달리 베트남은 한국과 동일한 왼쪽 운전석(LHD)인 데다 1992년 정식 수교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점차 향상되던 시기였다. 이때 가장 많이 수출된 중고차가 바로 현대차다. 한때 베트남 내에서 한글이 표기된 차를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한글이 곧 좋은 차임을 나타내는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수입됐음을 드러내는 자랑스러운(?) 표식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2025년 현재, 1억 인구의 떠오르는 베트남은 자동차 격전지로 변모했다. 현대차는 물론 토요타, 그리고 토종 브랜드 빈패스트 등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여기에 중국 EV 브랜드까지 합류하며 4파전이 한창이다.
치열함의 영향은 현대차라고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현대차는 아직 자신감이 넘친다. 소득 수준을 감안할 때 저가 EV가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프리미엄 시장을 주목한다. 베트남도 점차 고소득층이 늘며 제품력과 브랜드를 중시하는 문화가 생겨나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카오 홍투(사진) 현대탄콩 딜러 사장은 “인도네시아 및 태국과 달리 베트남에서 현대차는 이미 도로 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며 “30~35세 고소득 젊은 층이 현대차를 구매한다”는 말로 설명을 시작한다. 이어 “이들은 가격보다 디자인, 주행성능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현대차 디자인에 많은 가중치를 부여한다”고 강조한다. 현대차라는 브랜드와 제품은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하기에 이제는 시각적 디자인이 구매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베트남은 변화 속도가 무척 빠르다. 뒤늦게 자동차산업에 진출한 베트남 토종 브랜드 빈패스트가 저가 EV로 무섭게 시장을 잠식하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는 아이오닉5를 프리미엄 EV로 내세운다. 빈패스트가 저가 시장이라면 현대차는 프리미엄을 앞세워 경쟁 무대를 원천적으로 바꾸는 전략이다. 현지 판매사 관계자는 “아이오닉5의 배터리 용량과 중고차 가치, 그리고 완벽한 서비스 제공으로 브랜드 가치를 끌어 올리는 중”이라며 “이미 중고차 잔존가치가 70%(3년 후)에 달할 정도로 선호도가 높다”고 덧붙인다.
잔존가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에게 제품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와 같다. 특히 EV가 아니라도 이미 베트남 내에서 현대차와 토요타의 잔존가치는 차이가 별로 없다. 그 이유에 대해 현지 관계자는 토요타 대비 디지털 경험 측면이 강점이라고 풀어 놓는다. 넓은 실내 디스플레이가 젊은 소비층의 취향과 맞아 떨어지는데 젊은 소비자일수록 해당 부분을 ‘첨단’ 이미지로 수용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고민은 있다. ‘현대자동차’가 베트남 국민들에게 어떤 기업으로 인식되느냐다. 엄밀히 보면 현대차는 현지 생산 기업인 만큼 베트남에 정착해 베트남산 자동차를 판매한다. 딜러 관계자는 “베트남 내 판매 모델의 대부분은 현지에서 생산하지만, 일부 모델은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된 완성차를 판매하는 것도 있고, 현대차가 글로벌 브랜드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국산차인지, 수입차인지 혼동하는 경우가 분명 존재한다”며 “하지만 현대-탄콩은 베트남 내에서 현대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적극 알리려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 브랜드로서 ‘현대차’를 내세우지만 베트남 내에선 현지 생산으로 베트남 발전에 기여하는 현지 브랜드라는 점을 확산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 떠올린 아이디어가 번호판 부착 세레모니다. 베트남에선 신차 구매 후 달리는 번호판에 스티커가 부착돼 나온다. 스티커를 떼어내야 비로소 거리에서 운행 가능하다. 현지 관계자는 “베트남 기업임을 인지시키기 위해 전시장에서 소비자가 직접 스티커를 떼어내는, 일종의 언박싱 행사를 열어준다”며 “한국과 비슷한 문화가 있어 소비자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설명한다. 현지 회사로서 베트남 내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의 일환이다.
베트남은 분명 인도네시아, 태국과는 전혀 다른 현대차의 또 다른 도전 시장이다. 그래서 과거 잠시 1위를 했던 추억은 잊어야 한다. 일본차만 상대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중국 및 베트남 토종 기업과도 어깨를 견주어야 한다. 현지 관계자는 “초기 진출로 타이밍의 절묘함을 맛보았다면 이제는 본격 경쟁의 길로 들어선 것”이라며 “새로운 경쟁 구도는 새로운 도전 정신을 요구하기에 어떤 기업으로 지속될지 많은 고민을 한다”고 말한다. 이런 고민을 통해 현대차의 마지막 퍼즐, 동남아 시장 내의 입지가 오르기를 기대할 뿐이다.
하노이=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