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친환경 전환, 속도조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입력 2025년11월17일 10시50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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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온 상승 폭, 이미 1.5도 넘어서 
 -산업계, 여전히 '달성 가능한 목표'만 주장
 -속도 조절 아닌 속도 적응 필요한 때

 

 지난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577억tCO₂eq. 인류 역사상 가장 많았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이 추세가 계속될 경우 이번 세기 말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2.8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이 UN에 제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모두 이행하더라도 그 결과는 2.3~2.5도 상승이다. 

 


 

 이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약속을 모두 지켜도. 전기차를 타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고, 종이 빨대와 텀블러를 써도 지구는 이미 안전선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하면 생태계 붕괴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른다. 곤충의 약 18%, 식물의 16%, 척추동물의 8%가 서식지의 절반 이상을 잃는다. 상승 폭을 1.5도로 억제할 경우, 이는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해수면도 예외가 아니다. IPCC의 해양 보고서에 따르면 기온 상승 폭이 2도를 넘을 경우 해수면은 약 60cm 상승할 수 있다. 마이애미와 상하이가 물에 잠기고 우리나라에선 인천공항, 목포, 창원이 위험 범주에 들어온다. 그린란드와 남극의 빙하는 붕괴되기 시작하고 북극에서 얼음은 거의 없어지며 지구상 생명체의 3분의 1이 멸종 위험군에 들어간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생존의 문제지만 이런 절박함이 산업계에는 크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최근 정부의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부의 목표에 “내연기관차 퇴출 수준으로 과도하다”며 완화를 요구했다. 정부는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감축률 후보로 ‘48%’, ‘53%’, ‘61%’, ‘65%’의 네 가지 안을 제시하고 수송 부문에서는 전기·수소전기차 등 무공해차 누적 등록 목표를 840~980만 대(등록 비중 30~35%)로 설정했다. 하지만 KAMA는 이를 550~650만 대(등록 비중 19.7~23.2 %)로 낮추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건의했다.

 

 이는 ‘달성 가능한 수준’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산업의 현실을 이유로 목표를 낮추자는 건, 불타는 집 안에서 “조금만 늦게 나가자”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업계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국내 부품업체의 95 %가 중소기업이고 대부분이 내연기관 부품에 의존하고 있다. 전기차 전환으로 인력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노동계의 우려도 현실적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구는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계가 내세운 '중국산 전기차 잠식론'은 스스로의 경쟁력 부족을 덮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중국이 두렵다면 속도를 늦출 게 아니라 돌파해야 한다. 시장을 내주는 건 전환이 빠르기 때문이 아니라 혁신이 느리기 때문이다. 중국산 전기버스가 시장의 50%를 점하고 있는건 과연 싸기만 해서 그럴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핵심 수단은 무공해차 보급 목표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배출권 거래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전환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배출권 가격에 현실적 신호를 부여해 기업이 효율 개선과 기술 혁신을 스스로 추진하도록 유도하고 중소 부품업계에는 R&D와 재교육, 전환투자를 돕는 정책적 버팀목을 마련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이미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했고 일본은 하이브리드와 수소를 축으로 한 다층적 탄소중립 전략을 구체화했다. 미국은 IRA(인플레이션감축법)로 자국 전기차 생태계를 강화했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목표가 과하다”는 논쟁에 매달려 있다. 남들보다 뒤처진 현실을 만들어놓고 그 현실을 이유로 속도를 늦추자는 건 참 교묘한 논리다.

 

 국내는 방향이 엉뚱하다. 기후위기의 정점을 맞을 그 시기에 이미 세상에 없을 사람들이 지금의 속도를 논하고 있다. 내 생애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무책임이 결국 다음 세대의 재앙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산업계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감축 목표를 낮추는 대신 기술혁신·전환 지원·배출권 시장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게 정책이고 그것이 미래를 위한 정치다.

 

 지금 필요한 건 ‘속도조절’이 아니라 ‘속도적응’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늦게 움직이는 쪽이 더 큰 고통을 치른다. 2100년의 지구가 불타도 괜찮은가. 그들은 그때 없을지 몰라도, 그 불길 속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의 느긋함은 후세의 절망으로 되돌아온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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