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인 대응과 미래 비전 제시
페라리가 지난 10월 중순 이탈리아 마라넬로 본사에서 전 세계 기자들을 대상으로 ‘일렉트릭 테크 워크숍’을 열었다. 직접 현장에 참여했을 때의 느낌은 전동화 전환을 암시하는 새 시대의 서막처럼 보였다. 브랜드 역사상 첫 완전 전기 슈퍼카인 페라리 일레트리카의 구동 모듈과 배터리팩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내연기관의 왕좌에서 전기차 시대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행사장 위에는 미세한 긴장감도 함께 깔려 있었다. 전기화 선언이 갖는 기술적 의미만큼이나 시장은 그 반응을 즉각적으로 주가로 응답했다. 공개 직후 페라리의 주가는 밀라노 증시에서 최대 약 16% 급락하며 시가총액 약 135억 유로(약 156억 달러)가량이 사라졌다. 이를 두고 몇몇 글로벌 애널리스트를 포함한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슈퍼카 브랜드가 오랫동안 지켜온 내연기관 퍼포먼스라는 이미지가 전기차 전환에서 흔들리는 듯한 위축감이 투자심리로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두고 해석은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슈퍼카의 본질이 사운드·감성·압도적 퍼포먼스에 있는데 전기화는 결국 그 상징성을 희석시키는 방향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이번 급락을 단기적 충격으로 보는 시각에 무게를 뒀다. 정작 양산차가 등장하는 순간은 페라리가 축적한 차 제어, 섀시, 동력 기술에 전기 파워트레인의 새로운 가능성이 결합되면서 시장의 인식은 다시 반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욱이 페라리가 보여줄 퍼포먼스 EV의 기준은 기존 브랜드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같은 여러 의견보다 더 중요한 건 상징적 가치다. 페라리는 경쟁 슈퍼카 브랜드 중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헤쳐나가고 있다. 대부분 안정적인 PHEV 시스템을 바탕으로 출력 경쟁에 한창이고 전기 슈퍼카의 기술 베이스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페라리는 완전 전기 슈퍼카라는 미개척 영역에서 선도자 위치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이번 워크숍이 갖는 의미가 크다.
물론 지금은 시장은 선도적 행보보다 ‘속도’와 ‘성장성’에 더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돌아보면 기술 변곡점에서 가장 먼저 도전한 브랜드가 결국 패러다임을 바꾸고 시장의 방향을 정의해 왔다. 흔히 ‘총대를 맨다’고 표현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단순한 선제 행동이 아니라 기술적 확신과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부담까지 모두 짊어져야만 가능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페라리는 바로 그 무게를 감수한 채 앞으로 나섰고 자신들의 기술력과 브랜드 철학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기 슈퍼카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발표는 그저 새로운 모델의 예고가 아니라 미래 슈퍼카 시장을 향한 페라리의 의지이자 방향성을 세상에 드러낸 순간이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전기 슈퍼카가 정통성을 얼마나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전기 퍼포먼스를 구현해낼 것인가이다. 다른 하나는 시장이 선도를 인정하고 다시 페라리의 성장 궤도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느냐다. 물론 미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소비자의 행동과 구매 패턴, 시장의 흐름은 시시각각 바뀐다. 그래서 양산차가 나왔을 때 실제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고 오히려 예상보다 더 긍정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선택이 향후 시장의 기준선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페라리는 대단하고 시장 리더답다. 다음 페이지가 어떻게 펼쳐질지 긴장과 기대, 흥미로움을 갖고 유심히 지켜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