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력보다 UX' 새로운 퍼포먼스 전쟁
자동차 산업의 경쟁 축이 바뀌고 있다. 한때 브랜드의 기술력을 상징했던 출력 수치와 가속 기록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차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가’가 더 큰 가치를 가지기 시작했다.
스크린과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엔진이 된 시대, 브랜드들은 UX를 통해 자신들의 철학을 재해석하며 퍼포먼스의 정의마저 바꾸고 있다. 포르쉐의 정교함, 테슬라의 직관, BMW의 정제된 조작감, 로터스의 혁신적 하이퍼 OS까지이제 고성능의 무게추는 출력이 아닌 ‘디지털 경험’으로 이동했다.
로터스가 처음 선보인 하이퍼 OS는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두 개의 스냅드래곤 8155 칩으로 실시간 3D 그래픽을 구현하고 전체 기능의 95%에 세 번의 터치로 도달하는 UI 구조는 전통적 스포츠카 브랜드가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보여준다.
물리 버튼은 줄었지만 사용성은 되레 높아졌다. 메뉴 전환은 빠르고, 주행 모드·주행 보조·엔터테인먼트까지 모든 기능이 하나의 코어처럼 움직인다. 하드웨어 기반의 직관성을 하이퍼 OS라는 소프트웨어 본능으로 치환한 셈이다.
BMW는 전통의 i드라이브를 9세대까지 끌고 오며 완전히 다른 성격의 OS로 재정의했다.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를 기반으로 한 i드라이브 9은 메뉴 구조의 단순화와 그래픽의 수평적 정렬을 통해 운전자가 화면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한다.
회전식 다이얼, 터치, 음성 인식 등 입력 방식은 다양하지만 전체 경험은 하나의 논리 흐름 안에서 작동한다. BMW ID를 통해 클라우드 기반 개인화를 강화한 것도 특징이다. 차종을 바꿔도 운전자의 ‘차 생활’은 그대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것이다.
테슬라는 여전히 가장 단순한 UI를 지향한다. 화려한 그래픽보다 즉각적인 반응성과 직관성을 우선하며 모든 모델이 동일한 UI 구조를 공유한다. 오토파일럿을 켜는 순간 화면 톤이 파란색으로 바뀌고, 시스템이 무엇을 인식하고 어떤 판단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제공하는 방식은 테슬라만의 일관된 언다.
OTA 업데이트가 테슬라 소프트웨어의 생명줄이 된 것도 이런 단순성과 통일성 덕분이다. UI가 하드웨어의 부속이 아닌 독립적 가치가 된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포르쉐는 또 다르다. 시각적 화려함보다 정밀함과 반응 속도를 우선한다. PCM은 엔비디아 GPU와 퀄컴 SA8155P를 병렬 구성해 주행 관련 정보와 엔터테인먼트 영역의 지연을 분리해낸다.
포르쉐는 '정보 전달의 정확성'을 UX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화면에서 과한 애니메이션은 찾아보기 어렵고 주행 모드 변화나 회생제동 강도는 컬러·텍스트·사운드의 간결한 피드백으로 전달된다.
벤츠는 MBUX로 대규모 아키텍처 변화를 선택했다. 하나의 곡면 패널에 운전석·센터·조수석 디스플레이를 통합하는 구조다.
각 화면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도 중앙 프로세서를 공유해 그래픽 처리와 데이터 흐름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다. 음성 인식부터 클라우드 기반 계정 관리까지 메르세데스-미 플랫폼 아래 통합되는 방식은 UX를 브랜드 경험의 중심축에 세우려는 시도로 읽힌다.
접근은 크게 다르지만 방향성은 분명하다. 출력과 마력의 전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인터페이스의 효율, 정보 구조의 명료성, 시각적 피드백의 정확도, 운전자의 인지 부하를 줄이는 설계가 새로운 퍼포먼스의 기준이 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더 이상 차의 부속품이 아니라 브랜드 철학을 구현하는 주체가 됐다. OTA는 차의 생애주기를 확장하고 UX는 차와 운전자를 연결하는 감각적인 매개가 되며 시스템 반응 속도는 이제 출력만큼이나 퍼포먼스를 규정한다.
자동차 회사들이 출력 대신 UX를 이야기하는 지금, ‘디지털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