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왜 지금 한국에 자율주행 바람이 부나

입력 2025년11월26일 08시30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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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라 FSD, 캐딜락 슈퍼크루즈 한국 상륙
 -새로운 이동 경험에 주목, 개선할 부분도 많아

 

 잠시 주춤했던 자율주행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미국차를 중심으로 최신 주행 보조 기술을 탑재하면서 기대를 키우고 있는 것. 테슬라 FSD와 캐딜락 슈퍼크루즈가 한국 땅을 밟으면서 운전자 개입 없이 목적지를 이동하는 것에 대한 희망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수년간 규제와 제도 장벽으로 기능 제공이 불가능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변화는 “갑작스럽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자율주행에 대한 불을 지핀 건 테슬라다. 지난 23일부터 완전자율주행이라고 부르는 FSD 기능을 OTA 방식으로 배포하기 시작한 것. 더욱이 미국, 캐나다, 중국,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등에 이어 7번째로 FSD를 제공하면서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도 엿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감독형 FSD v14.1.4 버전이다. 카메라를 통한 비전 신경망이 실시간 도로를 파악하고 막힌 길이나 우회로까지 계산해 최적의 주행을 이어나간다. 단순 경로는 물론이고 도로에 놓인 위험물질까지 파악해 회피한다.

 

 물론 현재 한국에서 제공 중인 FSD가 운전자의 개입이 완전히 필요 없는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은 아니다. 감독형 FSD는 정확히 미국 자동차공학회(SAE) 기준 ‘레벨2(2단계) 자율주행’으로 분류된다.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해야 작동되고 이는 룸미러 위쪽에 위치한 카메라가 운전자의 눈동자를 파악한다. 구현 과정은 정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데이트를 마친 일부 테슬라 오너들 사이에서 테스트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으며 여러 층으로 된 복잡한 마트 주차장을 빠져나오거나 혼잡한 도로에서도 능숙하게 통과하는 모습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캐딜락코리아는 플래그십 전기 SUV 에스컬레이드 IQ를 국내 출시하면서 GM의 핸즈프리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슈퍼크루즈'를 탑재했다. 회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약 2만3000㎞의 고속도로 및 주요 간선도로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게 특징. 슈퍼크루즈는 역시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한 상태에서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고 주행할 수 있는 '핸즈프리 드라이빙'을 구현한다 교통 흐름을 감지해 자동차 간 거리를 유지하고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차선 변경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규제 및 기술 탑재 등 발목에 묶여 한동안 잠잠했던 자율주행이 왜 지금에서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을까? 이는 단순한 기술 업데이트나 제조사 선택의 문제를 뛰어 넘는다. 기술 패러다임 변화와 규제 완화, 그리고 한미 FTA의 구조가 동시에 맞물린 결과다.

 


 

 먼저,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 요소이자 장벽이었던 지도에 있다. 기존에는 고정밀 지도에 의존해야 했지만 국가 간 지도 보안 규제가 까다로운 한국에서는 작동 자체가 어려웠다. 분단국가의 특성을 고려해 자율주행용 지도 데이터의 반입이나 갱신 등 국내 법령이 매우 엄격했으며 기본이 되는 소스조차 확보할 수 없는 제조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자율주행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굳이 고정밀 지도가 아니어도 길을 분석하고 계산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것. 특히, 시간이 흘러 소프트웨어 처리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비전 카메라로 도로를 읽은 뒤 최적의 경로를 제공하는 알고리즘 또한 고도화됐다는 점이 크다. 고정밀 지도 의존도가 낮아지자 반입 규제 및 충돌 지점이 줄어들었고 한국에서도 기술적으로 구동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의 빠른 규제 전환이 속도를 높이고 있다. OTA 규제 완화, 부분 자율주행 기능의 적용 구간 확대, 지도 기반 검증 요건 조정 등 여러 제도를 손질하기 시작한 것. 허용 중심 체계로 옮겨가면서 외국 제조사 입장에서는 국내형으로 제한하던 최신 ADAS 기능을 적극 풀고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한미 FTA의 기술 비차별 원칙이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차의 안전장치·기술을 한국에서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쉽게 말하면 미국에서 판매 가능한 기능을 한국은 임의로 금지하면 안된다는 셈이다. 과거에는 보안 문제로 지도에 대한 접근을 막아 제한했지만 이제는 비전 기반으로 구현이 가능해지니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더 이상 "규제 때문에" 라고 말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제조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자율주행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이다.

 

 하지만 한미 FTA의 틈새를 파고든 전략이기 때문에 미국산 차만 구현이 가능하다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국내에는 중국산 테슬라가 더 많이 판매됐기 때문에 FSD가 보편화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많으며 슈퍼크루즈 역시 판매량이 높지 않은 수억원에 달하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를 제외하면 사실상 지금은 탑재할 수 있는 차종이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테슬라코리아가 다양한 트림의 미국산 차를 더 많이 갖고 올 것이라는 추측을 내 놓고 있으며 GM한국사업장 역시 쉐보레 볼트와 같은 대중적인 성격의 차를 미국에서 갖고와 슈퍼크루즈를 탑재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에만 한정된 상황 때문에 우리의 경쟁력이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에 정부는 운전자가 수동으로 방향지시등을 작동하지 않아도 알아서 차로변경을 지원하는 국제기준이 올해 9월 발효된 만큼 국내 도입을 위한 제도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제도를 선진화하느냐가 향후 대한민국 자율주행 시대로 가는 중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국 자동차 시장은 지금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막혀 있던 자율주행의 문이 열린 지금 제조사와 정부, 소비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미래 10년의 이동 경험을 결정지을 것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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