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한국에 사실상 '두 번째 고향' 구축
-그랑 콜레오스, 철저한 한국 기반 '오픈 이노베이션 제품'
세월의 격랑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이름들이 있다. 도시가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며 골목과 건축에 층위를 쌓아가듯 자동차 산업에도 몇몇 브랜드는 역사의 흔적을 차곡이 새긴다.
19세기 말 파리 외곽의 작은 공방에서 시작한 르노는 그런 이름 가운데 하나다. 산업 구조가 뒤바뀌고 수많은 제조사가 흩어졌지만, 르노는 126년의 시간을 견디며 유럽 대중의 일상 속에 스며든 몇 안 되는 존재다. 클리오·세닉·르노5가 유럽 올해의 차를 여러 번 수상하며 시대를 기록해온 것도, 결국 그런 맥락 위에 있다.
흥미로운건 르노가 한국으로 넘어오며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브랜드가 부산에서 차를 만들고 한국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상품을 설계하고 있다. 이는 르노를 단순한 ‘수입 브랜드' 혹은 외국계 회사 만으로 단정할 수 없게 만든다.
1990년대 후반 르노는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연을 맺었다. 르노삼성자동차를 거쳐 현재의 르노코리아까지 발전해오며 부산을 중심으로 한 생산·개발 체계를 단단하게 구축해 왔다. 유럽 메이저 제조사가 해외 시장에서 직접 생산하고 현지 소비자 경험을 토대로 상품성을 다듬는 구조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도 그다지 흔치 않다.
최근 르노가 내놓은 글로벌 전략 ‘인터내셔널 게임 플랜’은 바로 이 변화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그 첫 결과물이 르노코리아의 그랑 콜레오스다. 기존처럼 ‘유럽에서 개발된 차를 한국에 들여오는 구조’가 아니라, 애초 기획 출발선부터 한국 시장을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르노는 그랑 콜레오스를 만들며 한국 소비자의 특성과 도로 환경, 주행 스타일, 패밀리 SUV에 대한 요구를 초기 단계에서부터 반영하고 여기에 르노가 쌓아온 디자인·패키징·하이브리드 기술·주행 감성 노하우를 결합했다. 그랑 콜레오스가 출시 직후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은 배경에는 이런 구조적 접근이 자리한다.
프랑스 감성과 유럽 기술을 기반으로 하되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정면으로 겨냥한 전략은 르노 내부에서도 의미 있는 흐름으로 평가된다. 과거 글로벌 OEM들이 주로 보여 왔던 일방향적 개발 방식과 달리 르노는 한국을 단순한 소비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제품 개발의 테스트베드이자 핵심 시장’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랑 콜레오스의 성공은 르노의 글로벌 전략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르노는 이미 남미 등 주요 시장에서도 한국에서 검증된 협업·개발 방식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다듬어진 상품 기획과 품질 접근법이 글로벌 레퍼런스로 확장되는 흐름이 본격화되는 셈이다.
이렇듯 르노코리아라는 존재는 ‘국산차와 수입차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준을 넘어, 한국 시장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생산이 주는 가격 경쟁력과 서비스 편의성을 갖추면서도, 유럽 메이저 브랜드 특유의 기술·디자인 철학을 유지하는 구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체성이다. 프랑스에서 축적된 126년의 브랜드 자산과 부산에서 다듬어진 현지화 역량이 결합하면서 르노코리아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국내에 뿌리내린 프랑스 브랜드’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랑 콜레오스는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차다. 한국이 먼저인 기획, 유럽 메이저 브랜드의 정체성, 부산 생산이라는 독특한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성장한 브랜드가 이제는 한국 소비자를 위해 먼저 고민하고, 한국 도로에서 검증한 뒤 다시 세계로 향하는 흐름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르노는 여전히 변화 중이다. 그 변화의 중심엔 한국 시장이 있다. 126년의 시간을 지나온 글로벌 브랜드가 한국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찾고 오픈 이노베이션의 방식으로 또 한 번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르노코리아의 브랜드 전환 전략이 옳은 방향임을 보여준다.
변화의 흐름 속의 르노코리아. 이들은 어쩌면 ‘한국에서 존재하는 르노’가 아니라 르노의 미래를 다시 쓰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료제공 : 르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