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WRC 트리플 크라운 달성해
-아키오 회장, '한국 기자들에 축하받기' 목표 이뤄
-르망에서 제네시스와 더 뜨거운 경쟁 보여주길
토요타 가주 레이싱이 FIA 월드랠리챔피언십(WRC) 2025년도 시즌에서 또 한번 세계 정상에 올랐다. 최종전인 사우디아라비아 랠리에서 제조사 챔피언십과 드라이버 챔피언십, 코드라이버 챔피언십 등 3개 부문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것.
소식을 접하고 하나의 기억이 스쳤다. 토요다 아키오 회장이 지난 도쿄 오토살롱에서 올해의 목표 10가지를 밝혔던 일. 당시 그는 'WRC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해 한국 기자들에게 축하 받기'를 새해 소망(?) 중 하나로 내걸었다.
업계는 이 발언에서 단순한 이벤트 그 이상의 의미를 읽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제조사 총수가 '한국 기자들의 축하'를 목표로 삼는다는 말이 얼핏 농담 처럼 보였겠지만 아키오 회장, 아니 드라이버로서의 모리조(토요다 아키오 회장의 가명)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에 전략적 계산과 개인적 신념이 절묘하게 혼합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안다.
모리조는 모터스포츠를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경쟁을 좋아하면서도 경쟁자들을 '배움의 대상'이라며 존중한다. 이를 통해 상호 성장이 일어난다고 본다. 그런 그의 철학이 “한국 기자들의 축하”라는 문장을 통해 드러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다 보니 그가 한국을 언급하는 빈도와 방식은 단순한 친근감의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현대자동차를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인정하고 그 라이벌과 함께 아시아의 모터스포츠를 키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는 산업적 관점에서도 결코 가벼운 메시지가 아니다. 모터스포츠를 통해 기술과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은 토요타가 일관되게 유지해온 개발 철학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아키오 회장이 강조하는 모터스포츠의 본질은 단순한 ‘홍보의 장’이나 ‘브랜드 이미지 제고’가 아니다. 그들의 철학은 훨씬 원초적이며, 공학적이다. “모터스포츠에서 깨지고 부서지며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더 좋은 차를 만든다.” 토요타 내부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철학 중 하나다.
오늘날 자동차 개발의 상당 부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체될 수 있다. 공기역학, 충돌 분석, 노면 대응, 내구 시험 모두 정교한 데이터와 센서를 통해 예측 가능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타가 ‘부딪히고 깨져보는 경험’을 여전히 중시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뮬레이션은 예측일 뿐, 실패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모터스포츠는 예측이 깨지는 현장이다. 스펙 시트나 그래프에 드러나지 않는 ‘날것의 상황’이 항상 발생한다. 사막의 미세한 모래 입자가 흡기 시스템에 주는 영향은 어떤지. 공기압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급격히 달라지는 노면 온도 차이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드라이버의 의도치 않은 반응과 변수 속에서 차는 진짜 한계를 드러낸다.
토요타는 이 한계를 반복해서 경험하고, 그로 인해 더 나은 차를 만들고자 한다. 그것이 토요타가 모터스포츠를 바라보는 방식이며 우승보다 더 오래 남는 가치다. '기름 냄새 나고 시끄러운 차를 좋아한다'는 아키오 회장, 그리고 모리조의 취향이 단순한 취향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철학은 현대차의 고성능 개발 조직 N과도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그래서 두 브랜드의 경쟁은 단순히 누가 더 빠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진짜 차’를 만드느냐의 싸움으로 확장된다. 아키오 회장이 현대차를 ‘좋은 라이벌’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키오 회장은 지난해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선정한 ‘대한민국 올해의 차’ 시상식에서 외국인 최초로 ‘올해의 인물’에 오른 뒤 대리 수상 소감을 통해 “정의선 회장과 같은 상을 받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현대자동차와는 좋은 라이벌이며 함께 아시아에서 모터스포츠를 발전시키고 싶다.” 산업적 전략이자, 동시에 모터스포츠라는 본질적 훈련장에서의 전우애 같은 발언이다.
이 발언은 말 그대로였다. 현대차가 지난 시즌 드라이버 타이틀을 차지했을 때, 토요타는 일본 주요 일간지에 한국어로 축하광고를 냈다. 일본에서도 이 장면은 이례적이었다. 토요타 경리 본부장 야마모토 마사히로는 “내가 아는 한 일본 주요 신문에 한국어 광고가 실린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쟁을 넘어 인정이 있었고, 인정 너머엔 협력의 가능성이 있었다.
냉철하게 보면 이는 전략이다. 그러나 온기로 보면 이는 애정이다. 아키오 회장이 한국 기자들에게 축하받고 싶다고 말한 것은 단순히 한 문장의 이벤트가 아니다. 그는 한국과 현대차를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경쟁자로 바라보고 있으며 경쟁자에게 인정받는 순간을 진정한 승리로 여기고 있다.
WRC 우승은 기록이지만, 라이벌의 축하는 상징이다. 그 상징을 손에 넣기 위해 그는 한 해를 달렸고, 마침내 그 목표를 이뤘다. 그리고 이제 이 경쟁의 무대는 더 넓어진다. 내년이면 토요타는 르망 24시 무대에서 제네시스 마그마라는 또 다른 한국의 라이벌을 만난다. 경쟁의 지형도는 한층 뜨겁고 풍부해질 것이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그와 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우승을 축하해야 한다. 2025년 목표 달성에 대한 것에 대한 축하가 아니라 기술을 위해 싸우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 전체를 향한 존중의 박수다.
모터스포츠를 통해 차를 더 좋게 만들겠다는 그의 고집은 자동차 마니아라면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데이터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센서가 아무리 뛰어나져도, 실제 노면에서 ‘부딪히는 경험’이 차를 더 빠르게 만들고, 더 안전하게 만들고, 더 재미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모리조, 축하합니다. 내년에도 한국과, 현대차·제네시스와 좋은 승부 합시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