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를 싣는 이유는...
-로터스·포르쉐·벤틀리의 연말 연출
-성능 내려놓고 감성 택해
연말이 다가오면 해외 SNS와 자동차 커뮤니티에는 어김없이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페라리와 포르쉐, 로터스, 맥라렌, 벤틀리 같은 고성능·럭셔리 차의 루프 위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얹힌 모습이다.
스포츠카는 구조적으로 트렁크 공간이 협소하고 루프라인이 낮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부피가 큰 짐을 싣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차에 트리를 싣는 장면은 강한 대비에서 오는 유머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려한 차체와 계절 소품의 조합은 자연스럽게 사진 촬영과 공유를 부르고, 운전자와 구경꾼 모두에게 연말의 즐거운 분위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로는 로터스가 꼽힌다. 로터스는 2018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410마력의 에보라 GT410 스포츠가 등장하는 특별 영상을 공개했다. 차체 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단단히 고정한 채 영국 헤델의 테스트 트랙과 공장 내부를 드리프트로 질주하는 내용이다.
단순한 ‘트리 배송’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로터스 특유의 경량화와 핸들링 성능을 유쾌하게 드러내는 연출이다. 영상에는 에스프리와 F1 레이스카 등 브랜드의 상징적인 제품들도 등장하며 팬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이른바 드리프트마스(Driftmas)로 불리는 이 영상은 이후 매년 연말마다 회자되는 로터스의 대표 콘텐츠가 됐다.
포르쉐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적극적인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포르쉐에 크리스마스트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스포츠카도 일상을 살아간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이다. 유럽과 북미 오너들이 루프랙에 트리를 묶은 채 귀가하는 모습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 이미지가 커뮤니티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포르쉐는 이를 공식 SNS로 끌어안으며 ‘Driven by Dreams’라는 슬로건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와 스포츠카의 조합을 연례 전통처럼 소개하고 있다. 이 문화는 다이캐스트 미니어처로까지 확장됐다. 지난해에는 웨일스의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타이칸 터보 S로 약 200㎞의 겨울 드라이브를 떠나는 이야기를 공식 뉴스룸을 통해 소개하며 브랜드 감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페라리는 브랜드 차원의 공식 캠페인보다는 오너와 인플루언서들이 만들어내는 장면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라페라리나 F40의 루프 위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얹고 눈길을 달리는 모습은 ‘가장 비싼 차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짐’이라는 대비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레드불이 제작한 영상에서 페라리 F40에 루프랙을 달고 일본의 스키 슬로프를 달리는 장면은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대표적인 슈퍼카 연출 사례로 다시 소환된다. 개인 유튜버와 수집가들 역시 458이나 488에 트리를 싣거나 조명을 감고 축하 영상을 올리는 것을 연례 행사처럼 이어가고 있다.
맥라렌은 희귀한 레이싱카를 활용한 연출로 주목받았다. 전설적인 맥라렌 F1 GTR의 루프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묶고 달리는 장면은 자동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벤틀리는 유머와 장인정신을 결합한 연출로 차별화를 꾀한다. 2023년에는 오리지널 블로어를 약 85% 크기로 재해석한 전기차 ‘Bentley Blower Jnr’를 활용한 크리스마스 영상을 공개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싣고 눈길을 달리는 장면을 통해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장인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벤틀리는 과시보다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통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전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스포츠카와 크리스마스트리의 조합은 단순한 계절 이벤트를 넘어 브랜드 철학과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연말이 되면 도로 위에 등장하는 이 낯선 풍경은 자동차가 성능과 이동 수단을 넘어 감성을 공유하는 문화적 매개체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