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실패 딛고 신뢰 쌓은 '3대 경영 유산'
-관세·전동화·SDV..다음 과제 산적해
미국 진출 40년을 앞둔 현대자동차가 또 한 번의 중대한 분기점에 섰다. 품질과 신뢰를 앞세워 입지를 다져왔지만 이번 문제는 다르다. 관세 부담과 전동화 경쟁, SDV 전환이라는 복합 과제가 동시에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1986년 울산공장에서 생산한 전륜구동 승용차 ‘엑셀’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합리적인 가격을 무기로 진출 첫해 16만대, 이듬해 26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지만, 초기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흡한 품질 관리와 정비망 부족이 발목을 잡으며 브랜드 신뢰도는 급격히 흔들렸다.
위기 국면에서 현대차가 택한 해법은 가격 경쟁이 아닌 품질이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품질과 안전, 연구개발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설정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특히 1999년 도입한 ‘10년·10만마일 보증수리’ 정책은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전면에 내건 승부수로 미국 소비자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다.
이후 성과는 각종 지표로 확인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 충돌 안전 평가에서 총 21개 차종이 최고 등급을 획득하며 2년 연속 ‘가장 안전한 차’ 최다 선정 기록을 세웠다. 또 J.D.파워의 2025년 신차품질조사(IQS)에서는 글로벌 17개 자동차그룹 가운데 가장 우수한 종합 성적을 거뒀다. 안전과 품질 모두에서 미국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경쟁력을 입증한 셈이다.
브랜드 가치도 함께 올라섰다. 현대차그룹은 4년 연속 ‘세계 올해의 자동차(World Car of the Year)’에 선정됐고, 오토모티브뉴스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정주영 창업회장, 정몽구 명예회장, 정의선 회장을 글로벌 자동차 산업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꼽았다.
정의선 회장은 이와 관련해 “할아버지이신 정주영 창업회장의 고객 중심 경영철학은 지금 현대차그룹 핵심가치의 근간이 되었고, 아버지이신 정몽구 명예회장의 품질, 안전, R&D에 대한 신념은 현대차그룹의 경영철학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판매 실적 역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미국에서 89만6,000여 대를 판매하며 3년 연속 연간 최다 판매 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 부담 속에서도 가격 인상은 최소화하고 현지 생산 확대와 판매 믹스 조정을 통해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 점이 주효했다.
이 같은 전략의 중심에는 미국 현지 생산 강화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조지아주에 최첨단 제조 거점인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준공하며 미국 생산 120만대 체제 구축에 착수했다. 더불어 2028년까지 자동차와 부품, 물류, 철강, 미래 산업 전반에 걸쳐 총 21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전기차 보조금 종료라는 변수에도 전략적 대응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이후 현대차그룹은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강화하며 소비자 선택 폭을 넓히는 동시에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드러냈다.
과제는 여전히 적지 않다. 한미 협상 이후에도 남아 있는 15% 관세 부담,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전기차 업체와 중국 브랜드의 공세, 보조금 축소 이후의 시장 재편, 자율주행과 SDV를 둘러싼 기술 경쟁은 현대차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미국은 현대차의 최대 수출 시장이자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방향을 가늠하는 핵심 무대다. 지난 40년이 ‘신뢰를 증명하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40년은 변화의 속도와 깊이에 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 아래 현대차가 다시 한 번 도약의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