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반 덴 애커 르노그룹 디자인 부회장 인터뷰
-"공간감과 날렵함은 대립하지 않는다"
르노 필랑트는 르노가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과 디자인 철학을 집약한 결과물에 가깝다. 세단과 SUV의 경계를 허문 크로스오버라는 형식부터,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비례와 디테일까지 기존의 문법과는 분명히 다른 길을 택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로렌스 반 덴 애커 르노그룹 디자인 담당 부회장이 있다. 그는 필랑트를 통해 “공간감과 날렵함은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다름을 선택한 이유와 디자인에 담은 철학을 차분히 풀어냈다. 아래는 반 덴 애커 부회장과 나눈 일문일답.
-유럽에서는 소형차가 강세인데, 이번처럼 큰 차를 선보인 배경은 무엇인가.
"한국은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B세그먼트는 작게 느껴지고, C·D를 넘어 E세그먼트까지도 선호된다.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유럽에서 소형차가 갖는 강점은 분명하지만, 모든 시장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 각 시장이 필요로 하는 차를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큰 차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소형차는 밀리미터 단위까지 계산하며 디자인하지만 필랑트는 조각품을 다듬듯 접근했다. 형태와 비율보다는 전체가 주는 감성과 질감에 더 집중했다.
-공간감을 중시하는 SUV가 인기를 끄는 상황에서, 왜 이렇게 역동적인 디자인을 선택했나.
"르노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 솔직히 말하면 더 눈에 띄고 싶었다. 필랑트는 공간감과 개방감을 동시에 갖췄고 외관에서도 다이내믹한 인상을 준다. 그 자체가 이 차의 강점이다."
-SUV로 갔으면 더 쉬웠을 텐데, 새로운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르노는 한국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브랜드다. 프랑스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한국에서 제조를 하고 있고, 그만큼 ‘다르다’는 점에 집중하고 싶었다. 경쟁 차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봤다. 다르다는 것이 곧 훌륭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번 도전은 일종의 도박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르노의 디자인 방향성과 르노코리아와의 협업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르노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전 세계에 분산돼 있지만,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유기적으로 협업한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한국 시장의 경쟁력을 판단하기 위해 한국에서도 디자인을 개발하고 테스트하고 있다. 한국 시장은 배울 점이 많다. 파리와 서울은 각 지역의 수도인 만큼, 서로 시너지를 내며 협업하고 있다."
-오로라 프로젝트의 두 차 중 필랑트는 어떤 점에 집중했나. 그랑 콜레오스와의 차별점은.
"그랑 콜레오스가 실용적이고 전통적인 성격이라면, 필랑트는 보다 이국적인 차다.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유니크한 이미지를 담았다. 필랑트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수 있는 차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지점이다. 일반적인 여객기가 아니라 전용기를 탄 듯한 느낌, 프리미엄 클래스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승차감을 주고 싶었다."
-디자인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이 부분만큼은 제대로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포인트가 있다면.
"사실 모든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시장에서 독보적으로 눈에 띄기 위해서는 굉장히 대담하고 담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첫인상이 중요하다. 일단 새로운 라이트 시그니처를 도입했는데, 하부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는 구조다. 전면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요소다. 색상에서도 대조를 고민했는데 블랙은 개방감을, 화이트는 밝은 이미지를 준다. 여기에 한국 시장을 위해 ‘다크 포레스트 블랙’이라는 제3의 우아한 컬러를 도입했다. 측면은 활 시위를 당겼을 때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주도록 설계했고, 전체적으로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담았다."
-‘별똥별’ 콘셉트는 어디에 가장 잘 녹아 있나.
"아주 좋은 질문이다. 실내 앰비언트 라이트의 데코 요소에도 그 이미지를 담았고 스위칭이 가능한 글래스 루프를 통해 별을 한층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르노그룹이 디자인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공간감과 날렵함은 반드시 대조적인 개념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필랑트가 그 점을 증명하고 있다. 박시해야만 공간감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차체를 길게 뽑아낸 외관 비율을 디자인팀이 잘 구현했다고 본다. 하단부 그래픽에서도 메탈 소재를 얇게 사용해 차가 더 길어 보이도록 했다. 르노의 디자인 철학은 미래의 아이콘이 되는 것, 독보적인 차를 만드는 것, 그리고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로 남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항상 신선하게 다가가고 싶다. 한국 시장은 신차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곳인 만큼 쉽지 않지만, 이번 차만큼은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
-필랑트 디자인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네 바퀴가 달린 우주선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