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3위에도 '인하 버튼'..왜?
-결국 '안쓸 돈' 써야하는 경쟁사들
테슬라가 또 다시 가격을 내렸다. 한국 시장에서 이미 수입차 판매 3위에 오른 상황에도 공격적인 정책을 이어가는 모습에 업계에서는 의문이 나온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 쯤이면 충분히 팔렸는데 왜 더 낮추느냐"다. 단순히 판매량만을 늘리자니 점유율은 높고 가격은 업계에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매출을 생각하지 않는 가격 정책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해 국내에서만 5만9,916대를 팔며 전년 대비 두 배 이상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BMW(7만7,127대)와 메르세데스-벤츠(6만8,467대)에 이은 3위로 오직 전기차만 팔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한 성적이다.
그럼에도 테슬라는 모델3의 가격을 대폭 낮췄다. 스탠다드 RWD는 4,199만원. 롱레인지 RWD는 5,299만원, 퍼포먼스는 5,999만원으로 책정했다. 스탠다르를 기준으로 국고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적용하면 실구매가는 3,000만원 후반까지 내려간다. 국산 중형차와도 경쟁할 수 있는 가격이다.
가격 인하 폭이 워낙에 파격적이다보니 단순 판매 확대 논리는 설득력이 낮다. 이미 잘 팔리는 차를 더 싸게 파는 선택은 일반적인 제조사의 전략과는 거리가 멀어서다. 주목할만한 대목은 테슬라가 가격을 ‘수익’이 아니라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테슬라는 과거 가격 인하 국면마다 유사한 판매 패턴을 보여왔다. 가격을 내리면 1~2개월 내 출고와 등록 대수가 즉각적으로 늘고, 이후 일정 수준에서 판매량이 안정된다. 인하 효과는 단기적이지만 문제는 반복 인하에도 판매량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반 브랜드라면 잔존가치 하락과 브랜드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구간에서도 테슬라는 오히려 누적 판매량을 키웠다.
이는 테슬라가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니라 ‘기술 기반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이 바뀌어도 제품의 성격이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이 가격이면 살 만하다”는 실수요를 계속 자극하는 구조다. 가격 인하가 진입 장벽 제거 수단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여기에 FSD에 대한 기대감도 구매 심리를 자극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테슬라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차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은 ‘지금의 기능’보다 ‘앞으로 열릴 가능성’에 반응하고 있다. 문제의 모델3 스탠다드 RWD는 중국 생산 제품으로 당장 FSD 활용이 제한적이지만 “지금은 못 써도 언젠가는 된다”는 기대가 가격 인하와 맞물리며 구매 결정을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제반 환경도 테슬라에게는 매력적일 테다. 우리나라는 전기차 인프라가 일정 수준 이상 갖춰져 있고 보조금 규조가 비교적 명확하며, 치열한 경쟁 탓에 가격 변화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빠르다. 테슬라 입장에서는 가격을 조정할 때 마다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하기에 적합하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 여론으로도 반영된다. "모델3가 3,000만원대 후반"이라는 인식이 박히면 이후 등장할 전기차들은 이 가격대를 기준으로 평가받게 된다. 결국 경쟁자들은 가격을 높여 잡을 명분을 만들기 위해 테슬라는 지출하지 않는 '마케팅 예산'에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이런 와중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건 국내 완성차 업체다. 제네시스는 최근 GV60 마그마(9,657만원)를 출시했고 차세대 플래그십 전기 SUV GV90도 준비 중이다. 기아는 EV3, EV4, EV5에 고성능 GT 라인업을 추가할 예정이다. 1억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제품군인 데다 대중 라인업 마저도 기본 가격 대비 비싼 제품군들로 짜여 있다. 대부분 프리미엄·고성능 제품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렇다보니 테슬라의 가격 인하는 안 팔려서 내리는 가격 이라기보다 경쟁자를 긁기 위한 자극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신호를 줬을 때 반응이 빠르고 또렷한 곳이다. 테슬라는 이곳에서 수익보다 속도를 택했고 마진보다 기준선을 먼저 낮췄다.
어쩌면 테슬라가 가격을 내리는 이유는 단순해보인다.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게임 규칙을 바꾸기 위해서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