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92.9%, 너무 단순해진 시장
-선택지가 살아 있던 2016년
-다양성은 효율이 아니라 힘이다
요즘 ‘2016년 감성’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하나의 질문처럼 쓰인다. 그때는 왜 지금보다 덜 완벽했는데 더 재미있었을까. 선택지는 많지 않았지만 각자의 색은 분명했고 모두가 같은 답을 향해 달리지는 않았다. 자동차 시장 역시 그랬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168만110대다. 이 중 국산차는 135만5,296대, 수입차는 32만4,814대다. 브랜드별로 보면 현대자동차가 71만2,954대, 기아가 54만5,776대를 기록했다. 이를 합한 현대자동차그룹의 점유율은 국산차 기준 92.9%. 국내 전체 등록 대수 기준으로도 74.9%에 달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지금의 국내 자동차 시장은 설명이 단순하다. 독주, 혹은 과점이라는 표현이 크게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풍경은 조금 달랐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그 시절엔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2016년 감성'이라는게 있었다.
실제로 2016년은 국산차 시장이 제법 치열했던 시기로 회자된다. 쉐보레, 르노삼성(르노코리아), 쌍용차(KG모빌리티)가 각자의 무기로 시장을 흔들었다. '안전한 경차'를 전면에 내세웠던 쉐보레 스파크는 기아 모닝을 제치고 국산차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고 르노삼성 SM6는 쏘나타의 아성을 위협했다. 쌍용차 티볼리는 소형 SUV 시장 자체의 판을 키웠다.
흥미로운건 제품만은 아니다. 이들은 지금의 점유율(약 7.1%)보다 약 두 배 정도 늘어난 수치만으로 흥미진진한 시장 구도를 만들어냈다. 키워드는 측면승부. 정면에서 현대차와 기아를 따라잡기보다는 이들에게서 볼 수 없던 선택지를 보여줬다. 천편일률적인 차가 아니라 조금은 낯설지만 분명한 개성을 가진 차들 말이다.
대표적인건 소형 SUV 시장이다. 당시 이 세그먼트는 사실상 쉐보레·르노삼성·쌍용차의 놀이터에 가까웠다. 쉐보레 트랙스가 2013년 시장의 문을 열었고 르노삼성 QM3와 쌍용차 티볼리가 이를 빠르게 확장시켰다.
트랙스는 아베오를 기반으로 한 1.4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탄탄한 주행 성능으로 소형 SUV라는 새로운 세그먼트를 제시했다. 대중적 흥행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방향성만큼은 분명했다. 소비자의 시선을 본격적으로 끌어당긴 건 QM3였다. 디젤 엔진과 뛰어난 연비, 스페인산 수입차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지며 초도 물량이 7분 만에 완판됐다. 티볼리는 이 시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가솔린과 디젤, 사륜구동, 롱휠베이스까지 확장하며 월 평균 4,000대 수준의 안정적인 판매량을 기록했고 쌍용차에 ‘소형 SUV 1위’라는 타이틀을 안겼다.
이들은 시장에서 정면으로 맞붙는 과감함도 보여줬다. 2016년 등장한 쉐보레 말리부와 르노삼성 SM6는 쏘나타와 K5로 양분되다시피 했던 중형차 시장에 균열을 냈다. 파워트레인, 디자인, 상품 전략 전반에서 중형차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흔든 제품들이다. 두 차종은 그해 내내 쏘나타의 자리를 위협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말리부는 미국차 특유의 넉넉한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휠베이스 2830㎜, 전장 4925㎜라는 체급은 당시 LF 쏘나타(4855㎜)는 물론 그랜저 HG(4910㎜)보다도 컸다. 차체는 더 커졌지만 초고장력 강판과 알루미늄 적용 비중을 늘려 공차중량을 약 130㎏ 줄였다. 차가 점점 무거워지던 당시 현대기아차의 흐름과는 정반대였다. 전 라인업을 가솔린 터보 엔진으로 구성한 것도 동급 최초였다.
SM6는 또 다른 방향의 승부수를 던졌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에 차별화된 기능을 더했다. 7인치 TFT 클러스터, 운전자별 프로파일 설정 기능을 국산차 최초로 적용했고 풀 LED 램프와 헤드업 디스플레이, 액티브 댐핑 컨트롤까지 중형차 최초로 탑재했다. 택시를 과감히 배제하며 ‘프리미엄 중형차’라는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전략도 인상적이었다.
결과는 숫자로 증명됐다. SM6는 출시 첫 달인 2016년 3월 쏘나타를 제치고 중형차 월간 판매 1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약 1,000대 차이를 유지하며 판매 2위를 지켰고 연말에는 국산차 판매 9위에 이름을 올렸다. 말리부 역시 출시 일주일 만에 사전계약 1만대를 넘기며 흥행했고 쉐보레는 ‘가솔린 중형차 판매 1위’라는 점을 적극 강조했다. 법인과 LPG 수요 비중이 높았던 쏘나타와 K5를 은근히 겨냥했다.
이들의 '조금 다름'은 현대차와 기아의 신차 기획과 상품 전략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중형차 시장에서 체면을 구긴 현대차는 출시 3년 차였던 쏘나타를 풀체인지에 가까운 수준으로 개선했고 후속 DN8에서는 택시도 내놓지 않았다. 소형 SUV 시장에는 코나, 스토닉, 베뉴, 셀토스를 잇따라 투입했고 스파크에 1위를 내줬던 모닝은 ‘통뼈 경차’를 앞세워 안전성을 강조했다.
자동차 시장에서 다양성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브랜드가 각자의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말을 걸 때 시장은 활력을 얻는다. 상품은 날카로워지고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며 브랜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반대로 특정 브랜드가 과점에 가까운 구조를 형성하면 시장은 안정되지만 긴장감은 사라진다. 지금의 국내 자동차 시장이 그렇다.
자주 비교되는 일본 시장을 보자. 일본은 흔히 ‘수입차의 무덤’으로 불린다. 자국 브랜드 점유율이 95%에 달할 정도로 해외 브랜드가 설 자리가 좁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와는 결이 다르다. 일본 시장은 자국 브랜드 중심이지만, 특정 회사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는 않다.
토요타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약 60% 남짓이다. 나머지 35%는 혼다, 닛산, 미쓰비시, 마쓰다, 스바루, 스즈키, 이스즈, 다이하츠 등 여러 브랜드가 나눠 갖는다. 각 회사는 저마다의 색깔을 갖고 있다. 혼다는 엔진과 주행 감각, 마쓰다는 디자인과 감성, 스바루는 사륜구동과 안전, 스즈키와 다이하츠는 경차와 실용성으로 존재감을 유지한다. 시장 안에서 역할이 겹치지 않도록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셈이다.
이 구조가 주는 힘은 분명하다. 소비자는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고 브랜드는 ‘토요타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명분을 갖는다. 경쟁은 정면 충돌이 아니라 방향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일본 자동차 시장이 장기 불황 속에서도 기술과 개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반면 국내 시장은 어떤가. 현대차와 기아가 국산차 기준 약 92.9%, 전체 등록 대수 기준으로도 약 74.9%를 차지하고 있는 구조다. 수치만 놓고 보면, 일본보다도 더 강한 집중도다. 나머지 브랜드가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시장은 ‘어느 차를 살 것인가’보다 ‘어느 급의 현대기아차를 살 것인가’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2016년이 자꾸 떠오른다. 당시 르노삼성, 쌍용차, 쉐보레의 합산 점유율은 24.8%였다.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은 75.1%로 지금보다 낮았다. 숫자만 보면 큰 차이가 아닌 듯 보이지만 체감은 전혀 달랐다. 중형차, 소형 SUV, 경차 등 주요 세그먼트마다 ‘다른 선택지’가 실존했고 그 선택지는 실제로 시장을 흔들 만큼 힘을 갖고 있었다.
그 시절이 무조건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선택지가 많았고 차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싸우던 시기였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요즘 2016년을 다시 떠올리는 건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지금의 자동차 시장은 그때만큼 설레고 있는가.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