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만의 감각으로 무장한 7인승 SUV
-특유의 운전재미 포기하지 않은 점도 매력
푸조 답다는 말은 여전히 설명하기 쉽지 않다. 프랑스 감성이라는 말로 퉁치기엔 부족하고 낯설기만 한 차라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다.
분명한 점은 있다. 푸조는 언제나 다르게 가는 법을 알고 있다. 8년만의 완전 변경을 거듭한 5008은 그 태도를 아주 분명하게 드러낸다. 3008에서 볼 수 있는 푸조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면서도 그 역할을 잘 바꿔서 재정립했다. 운전의 감각은 유지하고 그 위에 가족이라는 요소를 얹었다.
▲디자인&상품성
외형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3008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면부의 사자 엠블럼과 발톱 형상의 주간주행등, 입체적인 그릴 구성까지 푸조 최신 디자인 언어를 그대로 공유한다. 다만 차체가 커지면서 전체적인 비례는 한층 안정적이다. 전장이 늘고 휠베이스가 길어진 덕분에 전면의 과감함보다는 중후함이 더해진 모습이다.
차체는 전장 4,810㎜, 전폭 1,875㎜, 전고 1,705㎜, 휠베이스 2,900㎜로 이전 세대 대비 모든 면에서 늘었다. 특히 공간감에 직결되는 휠베이스는 60㎜ 늘어나며 대형 SUV 만큼이나 길어졌다. 이 ‘증가분’은 5008의 성격을 결정한다. 7인승 패밀리 SUV가 요구하는 존재감과 공간을 정공법으로 확보했다는 의미다.
측면 실루엣은 더 커진 차체를 은근히 드러낼 뿐 공간감을 드러내고 차를 더 커보이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세단과 SUV의 경계를 넘나드는 푸조 특유의 실루엣이 잘 살아 있다. 3008보다 한층 길어진 차체가 주는 여유는 있지만 둔중함보다는 정제된 볼륨감에 가깝다.
후면 디자인 역시 군더더기 없다. 크롬 장식을 최소화하고 블랙 톤 위주로 정리한 램프 구성은 차급 대비 절제된 인상을 준다. 범퍼 하단의 소재감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오히려 실용적인 패밀리 SUV라는 성격과 잘 맞는다.
아이콕핏은 한층 진화했다. 대시보드 중심에는 플로팅 디자인의 21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이가 들어가며 무선 애플 카플레이·안드로이드 오토도 지원한다. 버튼 감각을 남긴 ‘아이-토글’은 최대 10개의 맞춤 위젯을 설정할 수 있는 터치식 단축키로 공조를 포함한 주요 기능을 취향대로 배치하도록 설계했다.
시트 구성은 가족 배려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동급에서 보기 드문 나파 가죽, 열선·통풍·마사지, 어댑티브 볼스터, AGR 인증 시트까지 장거리 피로에 초점을 맞춘 장비가 촘촘하다. 2열은 독립 3개 시트 구조에 슬라이딩·리클라이닝·40:20:40 폴딩을 지원해 성인 3명 탑승 시에도 각자 자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에 2열 열선, 선쉐이드, 실내 공기질을 보여주는 에어 퀄리티 모니터링, ISOFIX(최대 2개 카시트 장착)까지 패밀리 SUV 체크리스트를 빠짐없이 채웠다.
3열은 5008의 정체성을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요소다. 성인이 장시간 머물기엔 한계가 있지만 어린이나 단거리 이동용으로는 충분한 공간이다. 무엇보다 3열을 포함한 전체 공간 활용도가 자연스럽다. 필요할 땐 접고 필요할 땐 쓰는 구조가 직관적이다. 트렁크 역시 기본 용량부터 확장성까지 패밀리 SUV로서 부족함이 없다.
구체적으로 3열은 50:50 폴딩 독립 시트 2개로 구성되며, 2열 이지 액세스 기능으로 진입 공간을 넓혀 승하차 부담을 낮춘다. 적재 공간은 7인승 기준 348ℓ, 3열 폴딩 시 916ℓ, 2열까지 접으면 최대 2,232ℓ까지 확장된다. 풀 플랫 구조, 전동 테일게이트·킥 모션, 3열 하단 수납까지 갖춰 레저 활용성을 노렸다.
▲성능
기본 구조는 3008과 동일한 48V 스마트 하이브리드다. 1.2ℓ 3기통 터보 엔진에 전기모터를 결합하고 모터를 변속기 내부에 통합한 6단 듀얼클러치(e-DCS6)를 사용한다. 다만 차체가 커지고 무게가 늘어난 만큼 체감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출발과 저속 구간에서의 움직임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전기모터가 먼저 개입해 차를 밀어낸다. 이 과정이 아주 짧지만 분명하다. 덕분에 3기통 엔진 특유의 초기 진동이나 사운드는 한 템포 뒤로 밀린다. 3008에서도 느껴졌던 장점이지만 5008에서는 이 효과가 더 도드라진다. 차체가 커진 대신 출발 감각은 오히려 더 부드럽다.
가속 과정에서 엔진과 모터의 전환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설계됐다. 요즘 풀 하이브리드처럼 '지금 전기로 간다'는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항상 엔진이 주인공이고 모터는 뒤에서 밀어주는 구조에 가깝다. 이 덕분에 운전자는 하이브리드를 탄다는 의식 없이 내연기관차를 탄다는 감각으로 차를 다룰 수 있다. 듀얼클러치 변속기 역시 저속에서의 울컥거림을 상당 부분 억제했다.
출력 자체는 넉넉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합산 기준 약 145마력 수준으로 차체 크기와 7인승 구성을 감안하면 절대적인 성능보다는 일상 영역에 초점을 맞춘 세팅이다. 급가속 시에는 터보 엔진 특유의 반응이 느껴지지만 어디까지나 ‘필요한 만큼’이다. 다만 토크가 필요한 순간마다 모터가 개입해 빈 구간을 메워주기 때문에 답답함은 크지 않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성격은 조금 더 분명해진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존재감은 줄어들고, 차체 밸런스와 섀시 완성도가 전면에 나온다. 스티어링은 가볍지만 명확하고, 차체의 움직임은 예측 가능하다. 차급 대비 롤링을 완전히 억제하지 않고 운전자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방식은 여전히 푸조답다. 다만 3008보다 무게중심이 길어지면서 안정감은 더 커졌다.
승차감의 변화도 여기서 체감된다. 서스펜션은 여전히 단단한 유럽차의 결을 유지하지만 노면을 걸러내는 과정이 한층 둥글다. 요철을 넘을 때의 초기 반응이 부드럽고 잔진동이 실내로 전달되는 양도 줄었다. 특히 2열과 3열에서 느껴지는 차이는 분명하다. 5008이 ‘운전자를 위한 차’에서 ‘동승자를 함께 고려한 차’로 방향을 옮겼다는 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정숙성 역시 한 단계 위다. 풍절음과 노면 소음이 전반적으로 억제돼 있고 엔진 회전수를 적극적으로 낮게 유지하려는 성향도 분명하다. 크루징 상황에서는 차체 크기 대비 실내가 꽤 조용하다. 장거리 이동을 전제로 한 패밀리 SUV라는 성격이 주행 전반에 녹아 있다. 3008이 운전 재미를 포기하지 않은 SUV였다면 5008은 그 감각을 희석하지 않은 채 가족과 함께 탈 수 있도록 다듬은 차다.
▲총평
푸조 5008 스마트 하이브리드는 3008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방향은 분명히 다르다. 운전자의 감각을 중심에 둔 차에서, 가족을 함께 태우는 차로 역할을 넓혔다. 그렇다고 성격을 바꾸지는 않았다. 핸들링은 그대로고, 주행 감각도 익숙하다. 대신 승차감과 정숙성, 공간에서 여유를 더했다.
새로운 자극을 기대한다면 5008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3008의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면 5008은 고민이 필요 없는 선택지다. 더 많은 사람을 태우고 더 멀리 가기 위해 필요한 변화만 정확히 짚어낸 차다. 가족을 위한 SUV로 가는 길에서 푸조가 제시한 또 하나의 해답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