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인식 변화 적극 활용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내연기관을 잘 만드는 회사이고 BEV는 추가된 제품일 뿐이다. 하지만 BYD, 테슬라, 폴스타 등은 BEV만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기업이다. 제품 경쟁력은 BEV 전문 기업이 낫지 않을까?”
흥미로운 인식이지만 실제 시장에서 나타나는 결과다. 소비자는 BEV 초창기와 달리 점점 ‘내연기관’과 ‘BEV’를 성격이 다른 자동차로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 기업의 브랜드 인식이 들어가면 순간 뇌는 갈등한다. “자동차를 잘 만드는 기업 브랜드가 우선인가? 아니면 BEV 전문 브랜드가 나은 것인가?” 이때 핵심적 결정 요인은 시간이다. BEV 전문 기업의 등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판단의 무게는 전문 브랜드로 점차 기울어진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기업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 BEV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자동차 기업 브랜드의 힘이 약할수록 BEV의 경쟁력도 낮게 평가된다. 예를 들어 BMW가 내놓은 BEV는 모두 ‘i’ 브랜드로 출시되지만 ‘BMW’ 자체가 강력한 우산 역할을 한다. 이 말은 BMW가 내놓은 BEV는 여전히 ‘BMW’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흔히 이를 ‘브랜드 위계(Brand Hierarchy)’라 부르는데 1992년 마케팅학자 피터 파쿠르가 제시한 개념이다. 반면 현대차가 판매하는 BEV 아이오닉 5는 제조사와 제품이 대등한 위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내연기관을 잘 만드는 현대차가 내놓은 추가 제품으로 아이오닉 5를 인식할 뿐 BEV 전문 제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때 소비자는 BEV 전문 브랜드로 전환하려는 욕망이 발현되고 선택지로 테슬라, BYD, 폴스타 등이 시선을 끌게 된다. 그냥 자동차를 사려는데 그 중 전기차를 고르는 사람은 ‘종합 자동차기업 브랜드’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작정하고 BEV를 사려는 사람은 ‘전문 브랜드’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는 IT 기반의 기술이다. 맥킨지(McKinsey & Company) 미래 모빌리티 보고서에 따르면 BEV 고관여 구매자들은 전통적인 제조 기술보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자율주행 성능을 우선한다. 결국 내연기관 유산이 없는 전기차 전문 브랜드가 '순수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종합 자동차 브랜드보다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는 셈이다.
여기서 전통적 개념의 자동차 기업의 고민이 깊어진다. 이른바 ‘자기잠식(Cannibalization)’ 위험 때문이다. 내연기관 소비자를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서 BEV 전환도 이뤄야 하는 과제 해결이 쉽지 않다. 딜로이트 글로벌 자동차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테슬라 등의 전기차 전문 브랜드는 메시지가 단순하고 명확한 반면 현대차와 같은 종합 브랜드는 '대중차 제조사'와 '첨단 전기차 제조사'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이 불가피하다. BEV 전문 구매층의 선택지에서 종합 자동차 기업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최근 국내에서 나타나는 BEV 판매 동향은 이 점을 분명히 해준다. 현대차와 기아로 대표되는 국내 기업의 시장 지배력만 봐도 BEV 전문 브랜드의 공세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반면 내연기관 부문 장악력은 승용 시장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하다. 이 틈을 테슬라, BYD, 폴스타 등이 적극 파고들며 내연기관과 BEV의 간극을 넓혀가는 중이다.
따라서 일부에선 현대차와 기아의 BEV 브랜드 전략에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조언하기도 한다. BEV 경쟁의 주요 역할은 기아가 맡고, 내연기관은 현대차가 책임지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기아가 BEV 전문 브랜드를 만들어 육성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현대차가 브랜드 장벽을 넘기 위해 제네시스를 만들었다면 기아는 BEV 전문 브랜드를 구축, 육성해 내연기관 이미지와 완전히 분리시키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박재용(공학박사,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