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심리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어
-전기차 전환 기회로 보는 건 위험해
-시장 과대 해석보다는 냉정함 중시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국제 유가의 변동성이 상당하다. 트럼프와 미국 행정부의 발언, 대화 국면에 들어갔다는 뉴스와 함께 한편에서는 이스라엘과 후티 반군의 무력 충돌 등 여러 변수가 유가를 끊임없이 흔들고 있다.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흐름 속에서 시장은 기대와 긴장을 동시에 품고 있다.
통상 이런 국면에서는 소비 패턴의 변화가 빠르게 감지된다. 실제로 최근 자동차 시장에서도 미묘한 균열이 보인다. 기름값 상승은 분명 내연기관차의 부담을 키우고 있고 이에 대응하듯 완성차 업계는 전기차 프로모션을 강화하며 신차 출시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겉으로 보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수요 이동이라는 익숙한 공식이 다시 작동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서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읽힌다. 어떤 차를 사느냐가 아니라 차를 사느냐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단순히 연료비 부담을 넘어 전반적인 물가 상승과 맞물린다. 식료품, 주거비, 공공요금까지 동반 상승하는 상황에서 자동차는 가장 먼저 소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품목이다. 특히, 수천만 원 단위의 지출을 요구하는 신차 구매는 심리적으로 가장 쉽게 미뤄지는 선택지다.
이 지점에서 전기차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더 취약할 수 있다. 전기차가 메인카로 빠르게 올라오고 있지만 여전히 필수재라기보다는 선택재, 그중에서도 세컨드카 성격이 강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유지비 절감이라는 장점은 분명다. 다만, 초기 구매 비용과 충전 인프라, 감가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고려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굳이 지금 결정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결국 연료비가 비싸니 전기차로 갈아탄다는 단순한 논리는 실제 구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디젤차의 위축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경유가 휘발유 가격을 추월하면서 이번 유가 상승기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파워트레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디젤차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들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유가 상승이 하락폭을 키우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당 수요가 고스란히 전기차로 이동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당 부분은 구매 자체를 보류하는 방향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자동차 시장은 대체가 아니라 축소로 움직이고 있다. 완성차 회사들은 전쟁으로 시작한 유가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전동화 전환 가속은 커녕 자동차 소비 자체가 늦춰지는 최악의 시나오리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만큼 관건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금처럼 수요 자체가 위축되는 국면에서는 단순히 전기차 라인업을 늘리고 할인 폭을 키우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오히려 소비자가 지금 사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격 인하 경쟁이 아닌 총소유비용(TCO)에 대한 명확한 설득, 잔존가치 보장 프로그램, 충전 편의성 개선 등 구매 이후까지 포함한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을 과대 해석하지 않는 냉정함이다. 유가 상승을 전기차 전환의 기회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위험하다. 지금 시장이 보내는 신호는 전환이 아니라 지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계는 지금의 변동성을 기회이자 동시에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전동화 시대의 속도전에만 집중하기보다 소비자의 지갑이 다시 열릴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과 전략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