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이긴 시대
-SVNet. 어떤 반도체에도 잘 꽂히는 '힘'
-수직 공급망의 시대는 끝났다
산업을 가리지 않고 공급망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주문하면 납품하는 수직적 관계 대신 기술 로드맵을 함께 그리는 수평적 동맹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설계 단계부터 머리를 맞대는 장기 파트너십을 구축한 게 대표적이겠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독자적인 기술 자산을 보유한 기업만이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받는 시대. 그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 앱티브와 국내 인공지능 비전 인식 기업 스트라드비젼의 전략적 협력이다.
그렇다면 앱티브는 왜 스트라드비전을 선택했을가. 과거 자동차 산업에서 1차 부품사의 경쟁력은 생산 능력과 품질 관리 역량이었다. 2차 협력사가 개발한 부품을 조달해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였다.
그러나 SDV 시대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기능의 상당 부분이 소프트웨어로 구현되면서 어떤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통합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하게 됐다. 하드웨어 성능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해진 개념이 소프트웨어 지식재산권이다. 자율주행 인식 알고리즘, 운영체제, 데이터 처리 기술 등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이 공급망 안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앱티브가 스트라드비젼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트라드비젼의 핵심 경쟁력은 특정 반도체에 종속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구조에 있다. 기존 소프트웨어는 특정 프로세서에 최적화돼 개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하드웨어 플랫폼이 바뀌면 상당 부분을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했고 비용과 시간이 크게 늘어나는 문제가 따라왔다.
반면 스트라드비젼의 SVNet은 다양한 반도체 환경에서도 동일한 성능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차종별로 서로 다른 반도체를 적용하거나 공급망 변화로 하드웨어를 교체하더라도 기존 소프트웨어 자산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수명이 하드웨어보다 길어지는 시대인 만큼 이식 가능한 구조 자체가 핵심 경쟁력이 된 셈이다.
자율주행 기능이 고도화될수록 자동차는 더 많은 카메라와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성능을 높이기 위해 무조건 고성능 반도체를 탑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전력 소비와 발열, 비용, 공간 제약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차량용 전자 시스템의 특성 때문이다.
스트라드비젼의 SVNet은 제한된 하드웨어 자원 안에서도 높은 객체 인식 정확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은 메모리와 낮은 전력 소비로 고성능 인식을 구현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는 배선을 줄이고 전력 효율을 높이면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기능 확장을 쉽게 만들겠다는 앱티브의 스마트 통합 아키텍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스트라드비젼은 이미 여러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협력하며 양산 경험을 확보했다. 앱티브 입장에서는 검증된 기술을 플랫폼에 통합함으로써 개발 위험을 줄이고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셈이다.
앱티브와 스트라드비젼의 협력이 업계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공급망 관계 자체의 변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과거 1차와 2차 부품사의 관계는 수직적이었다. 발주하고 납품받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번 협력의 형태는 다르다. 1차 부품사는 글로벌 공급망과 통합 플랫폼 환경을 제공하고, 2차 협력사는 그 위에서 구동될 강력한 인공지능 기술을 공급하는 수평적 기술 동맹에 가깝다.
SDV 시대의 경쟁력은 더 이상 누가 더 많은 부품을 생산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누가 더 강력한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이제 공장이 아닌 코드와 알고리즘에서 결정되고 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