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브랜드 및 차의 성격에 맞는 음질 구현
-공학적인 지식과 예술 감성 모두 겸비
자동차를 평가할 때 엔진과 승차감, 디자인은 쉽게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운전자의 만족도를 결정짓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바로 소리다. 최근에는 자동차 구매 시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으며 그만큼 음악이 잘 들리는 수준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차들에는 콘서트홀처럼 공간감이 살아나기도 하고 운전석 한가운데서 가수가 노래하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동차 안에서 최고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중심에는 하만의 카오디오 어쿠스틱 시스템 엔지니어링(ASE, Acoustic System Engineering) 팀이 있다. 세계 주요 자동차 브랜드에 최적의 사운드 시스템을 설계하고 튜닝하는 이들은 자동차 음향 분야의 '어벤저스'라 불릴 만한 전문가 집단이다.
하만은 현재 대중 브랜드부터 초고급 럭셔리 브랜드까지 사실상 글로벌 카오디오 시장을 이끌고 있다. 제네시스에는 뱅앤올룹슨, 현대자동차에는 오디오 바이 뱅앤올룹슨, 기아에는 하만카돈을 공급하며 토요타(JBL), 렉서스(마크레빈슨), BMW(하만카돈·바워스 앤 윌킨스), 아우디(뱅앤올룹슨), 볼보(하만카돈·바워스 앤 윌킨스), 폭스바겐(하만카돈), 캐딜락(AKG) 등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 대부분과 협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존재감은 상당하다. 제네시스 G90 롱휠베이스에는 뱅앤올룹슨 프리미어 3D 사운드 시스템이 기본 적용되며 G90과 G80, GV60, GV70, GV80 및 GV80 쿠페에는 뱅앤올룹슨 고해상도 사운드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다. 현대차 디 올 뉴 넥쏘와 디 올 뉴 아반떼에는 오디오 바이 뱅앤올룹슨이 적용됐고 기아 셀토스와 니로, 타스만, EV3, EV4, EV5 등에는 하만카돈 시스템이 제공된다.
이처럼 다양한 브랜드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핵심 조직이 바로 ASE다. ASE는 일반적인 사운드 엔지니어가 아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오디오 엔지니어링'이 아닌 '어쿠스틱 엔지니어링'을 담당한다. 단순히 스피커 성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음향 환경 자체를 연구하는 조직이다.
자동차 실내는 일반적인 청취 공간과 완전히 다르다. 유리와 철판, 가죽,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가 소리를 반사하고 흡수하고 노면과 엔진, 공조장치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소음도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좋은 스피커만 장착한다고 좋은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ASE는 이러한 특성을 분석한 뒤 스피커 배치부터 앰프 성능, 디지털 신호처리(DSP) 알고리즘, 각종 음향 튜닝 기술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한다. 다시 말해 스피커 하나가 아닌 자동차 전체를 하나의 음향 공간으로 바라보고 개발하는 셈이다.
이들의 역할은 차 개발 초기 단계부터 시작한다. 고객사와 함께 차의 성격을 분석하고 어떤 브랜드의 오디오를 적용할지 소비자에게 어떤 사운드 경험을 전달할지,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상품성을 목표로 할 지까지 함께 논의한다.
예를 들어 럭셔리 세단이라면 공연장 같은 풍부한 공간감과 섬세한 음색이 중요할 수 있고 스포츠카라면 운전의 몰입감을 높이는 다이내믹한 사운드가 요구된다. 전기차는 엔진음이 사라진 만큼 정숙한 환경에서 더욱 세밀한 음향 튜닝이 필요하다. 결국 같은 하만 제품이라도 차종과 브랜드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운드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이유다.
ASE는 이러한 모든 과정을 총괄하며 자동차 제조사와 긴밀하게 협업한다. 고객이 원하는 브랜드 가치와 사운드 철학을 실제 차량 안에서 구현하는 것이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하만의 ASE 조직은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 거점에서 활동 중이다. 그 가운데 한국 ASE 팀은 단 8명의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국내 완성차 업체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며 글로벌 카오디오 개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좋은 카오디오는 비싼 스피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동차라는 복잡한 공간을 이해하고 물리학과 전자공학, 소프트웨어, 음악 감성을 모두 아우르는 전문가들이 있어야 비로소 최고의 사운드가 탄생한다. 우리가 제네시스와 BMW, 렉서스, 볼보에서 듣는 감동적인 한 곡의 음악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동차의 소리를 설계하는 ASE 엔지니어들의 치열한 연구와 노력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