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적벽'에서 마주한 국산차와 수입차

입력 2026년09월03일 09시05분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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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반떼 4,244만원·그랜저 6,363만원
-좁아진 가격 차이, 수입차에 새로운 돌파구
-판매 확대보다 ‘비교 대상’ 진입이 먼저

 

 적벽대전을 앞둔 조조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북방에서 살아온 병사들은 배에 익숙하지 않아 멀미에 시달렸다.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전력이 약해질 판이었다. 삼국지 속 조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들을 쇠사슬로 연결한다. 흔들림을 줄여 육지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장의 문제는 해결됐다. 병사들은 안정된 배 위에서 움직일 수 있었고 거대한 선단은 하나의 요새처럼 보였다. 그러나 배를 묶은 쇠사슬은 황개의 화공이 시작되자 불길이 선단 전체로 번지는 통로가 됐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던 선택이 역설적으로 상대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다.

 

 최근 현대차의 가격표를 보며 이 장면이 떠오른다. 현대차는 차의 상품성을 꾸준히 높여왔다. 차체는 커졌고 동력계는 다양해졌으며 과거 고급차에서나 볼 수 있던 편의·안전품목도 대중차에 들어왔다. 가격이 오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그렇게 오른 가격이 경쟁의 조건까지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아반떼 가솔린의 최고 가격은 3,697만원, 하이브리드는 4,244만원이다. 푸조 308은 3,990만~4,650만원, 폭스바겐 골프는 4,070만~4,640만원에 판매된다. 토요타 프리우스도 4,413만~4,593만원이다. 아반떼 하이브리드에서 프리우스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금액은 최소 169만원에 불과하다.

 


 

 그랜저에서는 경계가 더욱 흐릿하다. 그랜저 2.5 가솔린의 최고 가격은 5,775만원, 하이브리드는 6,363만원이다. 토요타 캠리는 4,843만~5,403만원으로 그랜저보다 낮은 가격대에 자리한다. 크라운도 5,963만~6,940만원으로 그랜저 하이브리드와 상당 부분 가격이 겹친다.

 

 물론 풀 옵션을 한 국산차와 기본형 수입차를 가격만으로 나란히 놓는 것은 완벽한 비교가 아니다. 아반떼와 그랜저의 최고 가격에는 다양한 선택품목과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 포함된다. 서비스망과 부품 수급, 유지비와 중고차 가치에서도 현대차가 유리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소비자의 비교는 가격표에서 시작한다. 아반떼에 4,000만원 이상을 지불하려는 순간 골프와 프리우스가 보이고, 그랜저에 6,000만원을 쓰려는 순간 캠리와 크라운이 들어온다. 편의품목 일부를 포기하거나 예산을 조금만 더하면 전혀 다른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다.

 

 과거 대중 수입차가 현대차와 경쟁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가격 차이였다. 독특한 디자인과 주행 감각, 브랜드 가치를 강조하더라도 국산차보다 1,000만원 이상 비싸면 비교 대상에 오르기 어려웠다. 여기에 현대차의 넓은 서비스망과 풍부한 편의품목까지 고려하면 소비자의 결론은 대부분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현대차가 가격을 올리면서 이 장벽이 낮아졌다. 수입차 업체가 획기적인 원가 절감을 이뤄낸 것도, 유지비 부담을 크게 낮춘 것도 아니다. 가만히 있던 수입차 쪽으로 국산차가 다가온 것이다. 수입차의 각종 할인까지 고려하면 실구매 가격 차이는 더욱 좁아질 수 있다. 수입차 입장에서는 뜻밖의 돌파구가 열린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곧바로 판매가 급증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기아가 구축한 영업망과 서비스 체계, 브랜드 신뢰는 여전히 강하다. 가격이 비슷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가 일제히 수입차로 이동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삼국지의 또 다른 장면이 이어진다. 적벽에서 조조의 남하를 막았다고 해서 유비가 곧바로 천하의 주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유비에게는 안정적인 영토도, 조조와 맞설 만한 병력도 부족했다. 그러나 적벽대전은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과 세력을 키울 공간을 열어줬다.

 

 그 틈을 읽은 인물이 제갈량이었다. 그는 조조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대신 형주와 익주를 기반으로 세력을 구축하는 천하삼분지계를 제시했다. 유비에게 필요했던 것은 당장의 대승이 아니라 자신이 설 수 있는 영토였다. 작은 교두보를 마련한 뒤 이를 바탕으로 세력을 키우는 것이 먼저였다.

 

 국내 대중 수입차 브랜드가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당장 현대차·기아의 판매량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시장점유율을 크게 확대하기에도 서비스망과 상품 구성, 브랜드 인지도 등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그러나 아반떼와 그랜저의 가격이 수입차와 맞닿으면서 적어도 소비자의 비교 대상에 들어갈 기회는 생겼다.

 


 

 푸조는 308의 디자인과 주행 감각을, 폭스바겐은 골프가 쌓아온 해치백의 상징성을 강조할 수 있다. 토요타는 프리우스와 캠리의 효율, 내구성, 하이브리드 기술을 내세울 수 있다. 모든 소비자를 설득할 필요도 없다. 국산차와 비슷한 가격에서 다른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부터 끌어들이면 된다.

 

 과거에는 이런 장점을 설명하기 전에 '그래도 비싸다'는 말에 가로막혔다. 이제는 '이 정도 차이라면 한번 비교해보자'는 단계까지 접근할 수 있다. 판매량의 변화보다 먼저 나타나는 것은 소비자 인식의 변화다. 수입차가 특별한 사람만 선택하는 비싼 물건이 아니라 국산차와 같은 예산에서 검토할 수 있는 대안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회를 영토로 바꾸는 일은 수입차 업체의 몫이다. 부족한 서비스망과 높은 부품값, 긴 수리 기간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어렵게 열린 틈도 오래가지 못한다. 차종과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품목을 갖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적벽에서 살아남았다고 촉한이 저절로 세워진 것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적벽의 쇠사슬은 조조의 선단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설치됐다. 그러나 그 쇠사슬은 상대의 불길이 번질 조건도 함께 만들었다. 현대차의 가격 인상 역시 더 좋은 상품을 만들고 수익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동시에 수입차가 현대차의 가격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도 열었다.

 

 현대차가 연결한 가격의 고리가 수입차에는 적벽의 돌파구가 됐다. 이제 그 기회를 천하삼분의 기반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수입차 업체들의 다음 선택에 달렸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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