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에서 내세우는 '한국식 럭셔리'
-규모와 가격보다 일관된 경험 중요
2024년 창립 55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은 'This is our pride' 라는 이름의 슬로건을 발표한다. 안전과 서비스를 위해 쌓아온 55년을 자부심(pride)이라는 단어로 압축한 것.
여기서 '우리(our)'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한항공 임직원일수도, 회사를 이용해온 소비자일수도 있다. 조금 더 넓게 바라보자면 대한민국일수도 있겠다. 대한항공은 단순한 항공사를 넘어 오랜 기간 세계의 하늘을 날아온 우리나라의 국적 항공사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산업이지만 이런 점에서 대한항공은 제네시스와도 묘하게 닮아있다. 하나는 땅 위에서,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사람을 이동시킨다. 탑승부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경험을 판다는 점도 같다. 무엇보다 올해, 지금까지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한 단계 더 높은 곳을 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제네시스는 출범 10년 만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급차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마그마 브랜드와 모터스포츠를 통해 고성능 영역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고 최근에는 플래그십 SUV GV90을 앞세워 기존 고급차의 문법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대한항공 역시 새 CI와 기내 서비스, 라운지를 대대적으로 바꾼 데 이어 오는 12월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앞두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두 회사가 도약의 방법으로 ‘한국적 럭셔리’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우리 기업들이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한국적인 것을 지웠지만 두 회사는 오히려 한국적인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대목이다.
제네시스는 한옥의 여백과 선, 달항아리의 절제된 곡선에서 영감을 얻는다. 한라산의 녹음, 제주 해안가의 현무암, 단청에서 차체의 색상을 길어 올리고, 한국의 손님맞이 문화를 소비자 접점에 활용한다. 대한항공도 새 일등석 라운지에 백자와 유기,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배치했고 기내식을 통해 우리의 식문화도 알리고 있다.
다만 한복의 선을 닮은 장식과 백자 한 점만으로 한국적 럭셔리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한국적인 소재를 가져다 놓는 것은 비교적 쉽다. 어려운 것은 한국적인 태도를 일관된 경험으로 바꾸는 일이다.
럭셔리는 결국 디테일에 대한 약속이다. 제네시스를 산 소비자가 서비스센터에서 일반 현대차 소비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한다면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은 힘을 잃는다. 대한항공의 일등석 식기에 백자가 놓여 있더라도 예약과 발권, 수하물 처리와 결항 대응에서 불편을 겪는다면 한국적 환대라는 말은 공허해진다.
두 회사 모두 앞으로 규모가 커지는 만큼 이 질문은 중요해진다. 제네시스는 판매량을 늘리면서도 희소성과 특별함을 지켜야 한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으로 더 강력한 네트워크를 갖게 되지만, 소비자의 선택지가 줄어든 만큼 더 무거운 책임도 떠안는다.
독점에 가까워진 지위를 프리미엄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과 존경받는 브랜드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럭셔리는 소비자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의 대가가 아니라, 소비자가 기대한 것보다 더 세심하게 대우받은 결과여야 한다.
제네시스와 대한항공이 넘어야 할 마지막 벽도 여기에 있다. 두 회사는 국내에서는 이미 특별한 상징이다. 제네시스 G90은 성공한 기업인과 사회 지도층의 차로 통하고 대한항공은 해외로 향하는 관문이자 한국에 도착했음을 가장 먼저 실감하게 하는 브랜드다. 그러나 세계적인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국적이라는 설명 없이도 선택받아야 한다.
독일 사람이 제네시스를 한국차라서가 아니라 제네시스이기 때문에 사고, 프랑스 사람이 대한항공을 한국 국적사여서가 아니라 대한항공이기 때문에 선택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인도 애국심이나 익숙함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가장 훌륭한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두 회사를 선택해야 한다.
제네시스와 대한항공은 이제 그 문턱에 서고 있다. 하나는 한국 최초의 세계적인 고급차 브랜드를, 다른 하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초대형 항공사를 꿈꾼다. 제네시스와 대한항공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이제 필요한건 더 큰 규모나 가격은 아니다. '우리의 자부심' 이라는 말을 소비자 입에서 먼저 나오게 해야한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