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전기차 주행거리, 아직도 중요할까?

입력 2026년09월30일 09시16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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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행거리보다는 전비에 집중
 -효율 강조한 기술력이 관건

 

 전기차를 평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주행거리였다. 완충하면 몇 ㎞를 갈 수 있는지가 곧 상품성이었고 숫자가 길수록 좋은 전기차라는 인식도 강했다. 제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이전보다 늘어난 주행거리를 앞세웠고 300㎞에서 400㎞, 다시 500㎞를 넘어서는 숫자 경쟁에 열을 올렸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초기 전기차의 가장 큰 약점은 짧은 주행거리였기 때문이다. 충전소는 부족했고 충전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연기관차처럼 몇 분 만에 에너지를 채울 수도 없었다. 이른바 '주행거리 불안'을 줄이는 데 큰 배터리만큼 확실한 해법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럴까. 최근 등장하는 전기차를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이제 웬만한 신형 전기차는 일상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준의 주행거리를 확보하고 있다. 충전 인프라도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었고 급속충전 성능 역시 빠르게 좋아졌다. 무엇보다 전기차를 만드는 기술 자체가 크게 발전했다.

 

 때문에 이제 관심을 가져야 할 숫자는 단순한 주행거리보다 '전비'일지 모른다.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늘리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배터리를 많이 넣는 것이다. 70㎾h보다 80㎾h, 80㎾h보다 100㎾h 배터리를 넣으면 같은 효율을 전제로 당연히 더 멀리 갈 수 있다. 하지만 공짜는 아니다. 배터리는 전기차에서 가장 무겁고 비싼 부품 가운데 하나다. 용량이 커질수록 차는 무거워지고 가격도 올라간다.

 

 여기서 일종의 역설이 발생한다. 멀리 가기 위해 배터리를 더 실었는데 그 배터리의 무게를 운반하기 위해 다시 더 많은 전기를 써야 한다. 늘어난 중량은 가속과 감속, 코너링 등 자동차의 기본적인 움직임에도 영향을 준다. 타이어와 서스펜션, 제동장치 역시 더 큰 하중을 감당해야 한다. 주행거리 숫자 하나를 높이기 위해 자동차 전체가 무거워지는 셈이다.

 

 그래서 최근 전기차 기술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무조건 배터리를 크게 만드는 것보다 가진 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가 중요해졌다. 모터와 인버터의 효율을 높이고 열관리 시스템을 정교하게 다듬는다. 구름저항을 낮추고 공기저항을 줄이며 회생제동도 세밀하게 조율한다. 같은 1㎾h를 가지고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이는 자동차 산업이 오랫동안 내연기관에서 걸어왔던 길과도 닮았다. 연료탱크를 계속 키워 주행거리를 늘리는 자동차를 두고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말하지 않는다. 같은 양의 연료를 가지고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엔진과 변속기, 차체를 개선하는 것을 기술 발전이라고 불렀다. 전기차도 결국 같은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행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충전 환경이 열악하거나 장거리 운행이 잦은 소비자에게 긴 주행거리는 여전히 중요한 구매 기준이다. 겨울철처럼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는 환경에서는 충분한 여유 용량도 필요하다.

 

 다만 일정 수준을 넘어선 뒤에도 주행거리 숫자를 늘리는 것이 최선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과 장거리 이동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주행거리를 확보했다면 이후부터는 50㎞를 더 가기 위해 배터리를 추가하는 것보다 같은 배터리로 50㎞를 더 갈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편이 훨씬 가치 있을 수 있다.

 

 전기차도 효율의 시대다. 무거운 배터리를 가득 싣고 숫자를 늘리는 방식은 기술적으로 가장 단순한 해법이다. 반대로 적정한 크기의 배터리로 충분한 주행거리를 확보하는 것은 자동차 전체의 효율을 끌어올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경쟁의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배터리 크기로 만드는 주행거리에서 기술로 만드는 주행거리로 말이다. 500㎞라는 숫자보다 그 500㎞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볼 때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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