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스타펜, 시즌 첫 승 달성..엔진 교체 이후 첫 우승 안겨
-러셀, 포디움 눈앞에서 파워 유닛 문제로 리타이어
-페라리의 역전극과 알론소의 포인트 획득까지..명승부 교차
막스 베르스타펜(레드불)이 혼돈을 뚫고 시즌 첫 승을 거뒀다. 반면 조지 러셀(메르세데스)은 포디움을 눈앞에 두고 차를 세웠고 페라리는 잘못된 전략으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뒤 추월쇼로 이를 만회했다. 페르난도 알론소(애스턴마틴)도 8위에 올라 귀중한 포인트를 챙겼다.
지난 4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세팡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린 2026 포뮬러원(F1) 바레인 그랑프리는 올 시즌 가장 변화무쌍한 레이스 가운데 하나였다. 중동 정세로 바레인을 떠나 말레이시아에서 치러진 이번 경기는 폭우와 경기 지연, 시시각각 변하는 노면, 타이어 전략과 세이프티카가 맞물리며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주인공은 베르스타펜이었다. 예선에서 1분35초130으로 폴 포지션을 차지했지만 출발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젖은 노면에서 인터미디어트 타이어를 선택한 메르세데스의 키미 안토넬리와 러셀이 빠르게 치고 나오면서 베르스타펜은 두 차에 모두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이후부터 베르스타펜 특유의 레이스 운영 능력이 빛났다. 러셀을 추월한 데 이어 발테리 보타스(캐딜락)의 사고로 세이프티카가 투입되자 레드불은 소프트 타이어를 선택했다. 미디엄을 택한 메르세데스와 엇갈린 선택이었다. 재출발 이후 베르스타펜은 안토넬리를 1~2번 코너 바깥쪽에서 추월하며 선두를 되찾았고 이후 빠른 랩타임을 이어가며 격차를 벌렸다.
경기 막판 다시 세이프티카가 등장하면서 어렵게 쌓은 리드는 사라졌다. 그러나 베르스타펜은 마지막 재출발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안토넬리를 2.307초 차이로 따돌리고 가장 먼저 체커기를 받았다. 시즌 첫 승이자 개인 통산 72번째 우승이다. 동시에 올해부터 자체 파워유닛 시대를 연 레드불 포드 파워트레인의 첫 그랑프리 우승이라는 의미도 남겼다.
반면 러셀에게 세팡은 잔인했다. 초반 안토넬리와 함께 선두권을 장악한 러셀은 베르스타펜에게 자리를 내준 뒤에도 꾸준히 포디움권을 지켰다. 안토넬리와 순위를 주고받으면서 메르세데스의 더블 포디움 가능성도 높였다. 그러나 종료를 불과 5랩가량 남긴 시점,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파워유닛 이상이 발생했다. 러셀은 결국 트랙 가장자리에 차를 세워야 했다.
단순한 리타이어 이상의 타격이었다. 안토넬리는 2위로 18점을 추가한 반면 러셀은 무득점에 그쳤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의 드라이버 챔피언십 격차는 84점까지 벌어졌다. 시즌 종료까지 7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러셀의 타이틀 경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페라리의 레이스는 정반대 의미에서 극적이었다. 예선에서 루이스 해밀턴이 2위, 샤를 르클레르가 4위를 확보하며 우승 경쟁까지 기대할 만했지만 시작부터 전략이 꼬였다. 특히 해밀턴은 젖은 노면에서 슬릭 타이어를 선택하는 승부수를 던졌다가 순위가 급락했다. 2번 그리드에서 출발한 차가 한때 18위까지 밀렸다.
그 뒤의 레이스는 '추월쇼'였다. 노면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페라리의 속도가 살아났고 해밀턴은 10랩 사이 8차례 추월을 성공시키며 순위를 끌어올렸다. 세이프티카도 초반 잃어버린 시간과 간격을 만회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해밀턴은 세르히오 페레스(캐딜락)와 오스카 피아스트리(맥라렌) 등을 차례로 제압했고 경기 후반에는 아이작 하자르(레드불)까지 넘어섰다. 러셀의 리타이어까지 겹치며 최종 순위는 3위였다.
르클레르도 만만치 않았다. 경기 초반 후미까지 떨어지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꾸준히 순위를 회복해 해밀턴 바로 뒤인 4위로 경기를 마쳤다. 결과만 놓고 보면 페라리는 3·4위로 적지 않은 점수를 챙겼지만, 예선에서 2·4번 그리드를 확보했던 점을 감안하면 첫 타이어 선택이 아니었다면 우승 경쟁의 양상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다.
베테랑 알론소의 포인트 획득도 눈길을 끌었다. 혼란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알론소는 8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애스턴마틴에 4점을 안겼다. 선두권의 화려한 추월전만큼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변화하는 노면과 잦은 변수 속에서 순위를 지켜낸 결과였다. 알론소의 중위권 진입은 상위권 경쟁 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장면을 안겼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최종 순위는 베르스타펜-안토넬리-해밀턴-르클레르 순이었다. 하자르가 5위, 피아스트리가 6위를 차지했고 리암 로슨(레이싱불스)과 알론소, 랜도 노리스(맥라렌), 아비드 린드블라(레이싱불스)가 뒤를 이어 포인트권을 완성했다.
이번 바레인 GP는 한 경기 안에서 F1의 거의 모든 변수를 보여줬다. 빠른 차만으로는 부족했고 비가 내리는 순간 어떤 타이어를 선택하느냐가 순위를 뒤집었다. 세이프티카 한 번이 벌어진 격차를 없앴고,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는 신뢰성 역시 경기 결과를 갈랐다.
그 중심에서 베르스타펜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러셀은 기계적 문제 앞에서 좌절했다. 페라리는 스스로 만든 위기를 추월로 만회했고 알론소는 혼란을 버티며 포인트를 가져갔다. 변화무쌍한 세팡에서 열린 '바레인 GP'는 왜 F1이 마지막 체커기까지 지켜봐야 하는 스포츠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한 판이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