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보다 낮은 전기차 가격, 선택의 문턱 낮춰
-400V 시스템 선택도 숫자보다 실용성과 균형 우선
-"전기차도 일상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길 기대"
렉서스가 신형 ES를 통해 전동화 전략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무조건 높은 출력과 긴 주행거리, 빠른 충전 속도를 앞세우기보다 소비자가 일상에서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 집중한 것이다. 특히, 순수전기차의 가격을 하이브리드보다 낮게 책정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13일 신형 ES 공개 행사장에서 만난 렉서스 개발진은 신차의 핵심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 숫자보다 경험을 강조했다. 최고출력이나 배터리 용량 같은 제원만으로 자동차의 가치를 설명할 수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치아시 코헤이 렉서스 인터내셔널 수석 엔지니어는 "신형 ES는 숫자를 목표로 개발한 차가 아니다"라며 "고객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이를 통해 ES만의 가치를 더욱 발전시키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는 렉서스가 오랜 시간 추구해 온 브랜드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1989년 처음 등장한 ES는 편안하고 쾌적한 이동 경험을 핵심 가치로 삼아왔다. 오랜 시간 운전해도 피로가 적고 조용한 실내에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ES의 역할이었다.
신형 역시 이러한 정체성을 유지했다. 차체 크기를 키우고 새로운 플랫폼을 적용한 것도 단순히 외형적인 변화를 위한 선택이 아니다. 공간 활용성과 쾌적성을 높여 기존 ES가 제공했던 가치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개발진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전기차를 바라보는 렉서스의 시각이다.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는 배터리 용량과 주행거리, 충전 속도 등을 둘러싼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800V 고전압 시스템이나 대용량 배터리, 고출력 모터 등이 상품성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렉서스는 신형 ES에 CATL 배터리와 400V 시스템을 선택했다. 개발진은 이러한 결정이 기술적인 한계보다는 자동차 전체의 균형을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핫토리 타카유키 렉서스 인터내셔널 차량 퍼포먼스 리더는 "각종 수치에 중점을 뒀다면 더 큰 배터리와 고출력, 고전압 시스템을 적용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를 위해 크고 무거운 시스템을 탑재하는 것이 과연 자동차에 좋은 선택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고객이 얼마나 실용적이고 스트레스 없이 차를 사용할 수 있느냐는 점"이라며 "그동안 축적해 온 렉서스다운 경험을 전기차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배터리를 키워 주행거리를 늘리는 것보다 적절한 시스템 구성으로 효율과 승차감, 주행 안정성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미다. 고전압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ES의 성격과 사용 환경에 맞는 기술을 선택했다는 설명에 가깝다.
실제로 신형 ES 개발 과정에서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구현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렉서스는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제공하는 멀티패스웨이 전략에 따라 신형 ES를 개발했다. 그러나 같은 플랫폼을 사용한다고 해서 개발 과정까지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개발진은 "같은 플랫폼을 사용했지만 사실상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자동차를 개발한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차이는 배터리의 유무와 이에 따른 무게중심의 변화였다. 전기차는 차체 하부에 무거운 배터리를 탑재하기 때문에 하이브리드와 중량 배분 및 운동 특성이 달라진다. 이에 따라 승차감과 핸들링을 구현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개발진은 이를 사람이 짐을 들고 걷는 상황에 비유했다. 무거운 짐을 들었을 때와 가벼운 짐을 들었을 때 몸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처럼 자동차 역시 중량과 무게중심에 따라 움직이는 감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충돌 안전성 확보도 중요한 과제였다.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는 차체 구성과 충돌 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달라 각각의 특성에 맞는 안전 설계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렉서스가 포기하지 않은 것은 일관된 주행 감각이다. 구동 방식은 달라도 운전자가 느끼는 편안함과 안정감, 정숙성만큼은 ES라는 이름에 걸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국내 판매 전략에서도 확인된다. 렉서스는 신형 ES 전기차의 가격을 하이브리드보다 낮게 책정했다. 일반적으로 전기차는 배터리 원가 등의 영향으로 동급 하이브리드보다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형 ES는 다른 접근을 택한 것이다.
여기에는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부담을 낮추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콘야마 마나부 렉서스코리아 사장은 "한국에서는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기차를 경험하지 못했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고객들이 있다"며 "반면 렉서스 하이브리드는 오랜 판매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는 좋은 전기차와 6세대 하이브리드를 함께 개발한 만큼 고객들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랐다"며 가격 책정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전기차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일반적인 라인업의 하나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전기차를 별도의 첨단 상품으로 강조하기보다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파워트레인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 하겠다는 의미다.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중 무엇이 더 우수한지를 강조하기보다 각각의 생활환경에 맞는 선택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초기 시장 반응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강대환 렉서스코리아 부사장은 신형 ES에 대한 고객 반응이 기대 이상이라며 약 3~4개월분의 출고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기차 세단에 대한 소비자들의 초기 반응에는 다소 낯설어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점차 전기차에 대한 관심과 선택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질의응답을 통해 브랜드가 신형 ES를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전동화 시대에도 렉서스가 추구하는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떤 동력원을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그 차를 타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느냐다. 신형 ES는 그 답을 숫자가 아닌 렉서스다운 감각에서 찾고 있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