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m 넘는 차제에도 승용차같은 조향감 인상적
-도심 운송 최적화 설계, 편의성과 효율에 집중
-힘의 크기보다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보여줘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충분히 긴 지렛대와 발 디딜 곳만 있다면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힘은 유한해도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거대한 물체도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움직이는 건 어쩌면 인류가 도구를 발전시켜 온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타타대우모빌리티의 신형 중형 트럭 하이쎈의 운전대를 잡으며 문득 이 오래된 이야기가 떠올랐다. 길이 9m가 넘는 거대한 트럭이지만 운전대를 돌리는 데는 별다른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 C세그먼트 해치백을 운전하는 것처럼 가볍고 산뜻했다. 커다란 운전대를 두 팔로 힘껏 돌리는 트럭 운전자의 모습을 상상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적어도 하이쎈은 그렇다.
▲디자인&상품성
첫 인상부터 예사롭지 않다. 화물차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콘셉트카를 보는 듯한 인상이다. 전면부는 간결한 면과 날카로운 조명으로 구성했다. 중형 트럭 최초로 기본 적용한 LED 헤드램프는 이러한 인상을 더욱 강조한다. 기존 트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투박하고 위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산업 현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기에는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세련되고 하이테크한 분위기가 강하다. 물론 트럭의 본분은 멋을 내는 데 있지 않다. 그럼에도 상용차라고 해서 반드시 투박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차체 구성에도 분명한 의도가 담겼다. 하이쎈은 준중형 트럭의 컴팩트한 캡 구조를 바탕으로 중형급 적재 능력을 확보했다. 경쟁 중형 트럭보다 캡 폭이 115㎜ 좁고, 높이도 고상캡 기준 325㎜ 낮다. 좁은 도로와 복잡한 도심에서의 기동성을 고려한 결과다.
시승차는 초장축 슬리퍼캡 사양으로 길이 9,120㎜, 너비 2,370㎜, 높이 2,520㎜의 차체를 갖췄다. 축간거리는 5,300㎜에 달한다. 운전석만 보면 비교적 아담하지만 뒤로 길게 뻗은 적재함을 바라보면 영락없는 중형 트럭이다. 좁은 캡으로 기동성을 확보하면서도 화물을 싣기 위한 공간은 충분히 마련한 셈이다.
실내도 인상적이다. 풀 디지털 계기판을 비롯해 다이얼 타입의 자동변속기 조작부, 스마트키와 원격 시동 기능까지 갖췄다. 각종 스위치와 편의장비의 구성도 직관적이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주요 기능을 어렵지 않게 조작할 수 있다. 승용차에서 익숙하게 접했던 편의성을 트럭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운전석에는 서스펜션 시트가 기본 적용된다. 장시간 운전해야 하는 화물차 운전자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구성이다. 노면에서 전달되는 충격을 효과적으로 걸러내는 덕분에 일반적인 시트와의 차이가 상당하다. 실제로 조수석에 앉았을 때 승차감이 유독 거칠게 느껴졌을 정도다. 운전석의 쾌적성이 그만큼 돋보였다는 의미다.
안전장비도 충실하다. 긴급제동 시스템과 차선이탈경고, 능동형 크루즈 컨트롤, 차체자세제어장치 등이 기본이다. 커넥티드 서비스인 쎈링크와 차 관제 시스템도 지원한다. 단순히 화물을 운반하는 기계에서 운전자의 편의와 운송 효율을 함께 고려하는 이동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능
다이얼 타입의 변속기를 중립에 놓고 에어식 주차 브레이크를 해제했다. 기어를 드라이브(D)에 체결한 뒤 가속페달을 조심스럽게 밟자 거대한 차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용차처럼 즉각적인 가속 반응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하이쎈은 어디까지나 무거운 짐을 싣고 달리는 화물차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약 1초의 간격을 두고 동력이 전달되는 느낌이다. 여느 트럭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특성이다. 그렇다고 이를 단점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무거운 화물을 싣고 움직이는 트럭에겐 스포츠카같은 즉각적인 응답성보다 섬세한 제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면이 고르지 않은 곳에서는 운전자의 몸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때 의도치 않게 가속페달을 깊게 밟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완만한 출력 반응이 오히려 적절하게 느껴진다. 승용차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반응이 화물차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특성이 되는 셈이다.
시승차에는 HD현대인프라코어 계열의 5.0ℓ DX05 디젤 엔진과 ZF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최고출력은 240마력, 최대토크는 90㎏·m다. 하이쎈에는 이 밖에도 235마력의 커민스 4.5ℓ 엔진과 앨리슨 9단 자동변속기 등이 마련된다.
일단 시승차의 엔진과 변속기 조합은 만족스럽다. 출발 과정에서 느껴지는 완만한 반응과 별개로 실제 주행에서 동력을 전달하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ZF 8단 자동변속기와 엔진의 조화도 훌륭하다. 화물차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일상적인 운송 환경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동력 성능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조향감이다. 스티어링 휠이 놀라울 만큼 가볍다. 과장 조금 보태면 C세그먼트 해치백을 운전하는 것처럼 산뜻하다. 커다란 운전대를 두 팔로 힘껏 돌리는 트럭 운전자의 모습을 상상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손끝에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원하는 방향으로 차체를 이끌 수 있다. 거대한 덩치와는 사뭇 다른 감각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이야기한 지렛대의 원리처럼 중요한 것은 힘의 크기보다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다루느냐다. 하이쎈은 이러한 관점에서 제법 흥미롭다. 강력한 팔 근육이나 숙련된 조작 기술을 요구하기보다 운전자가 적은 힘으로도 거대한 차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
시야도 만족스럽다. 높은 운전석에 앉으면 전방 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차체 곳곳에 배치된 거울도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덕분에 처음 마주한 거대한 차체가 생각만큼 부담스럽지 않다.
물론 긴 적재함의 존재까지 잊어서는 곤란하다. 차선을 변경하거나 교차로를 선회할 때면 후방 거울을 통해 차체 끝부분이 완전히 빠져나왔는지 습관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승용차와 다른 차체 길이와 회전 궤적을 의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그 정도를 제외하면 운전 자체는 의외로 수월하다.
승차감에서는 화물차의 특성이 드러난다. 이날 시승은 적재함에 짐을 싣지 않은 공차 상태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주행 중 적재함에서 발생하는 진동이 비교적 크게 느껴졌다. 적재 하중에 맞춰 설계된 서스펜션이 충분한 무게를 받지 않은 상태인 만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다.
다만 운전석에서 느끼는 쾌적성은 사뭇 다르다. 기본 적용된 서스펜션 시트가 노면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기 때문이다. 조수석에서 상대적으로 거칠게 느껴졌던 진동도 운전석에서는 상당 부분 완화된다. 장시간 운전해야 하는 운전자에게는 강력한 엔진 못지않게 중요한 장점이다.
▲총평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무거운 물체를 움직이는 방법만이 아니었다. 인간이 가진 힘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도구와 기술의 발전은 결국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 하이쎈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더 많은 짐을 싣거나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필요한 성능을 적절하게 갖추고, 운전자가 이를 얼마나 쉽고 편안하게 다룰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 시승에서 이러한 개발 방향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부분은 운전 편의성이었다. 가벼운 스티어링 휠과 탁 트인 시야, 직관적인 조작계는 거대한 트럭을 운전한다는 심리적 부담을 크게 낮췄다. 여기에 서스펜션 시트가 제공하는 쾌적성까지 더해지면서 장시간 운전에도 부담이 적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좋은 트럭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가에만 있지 않다. 그 짐을 운반하는 사람이 얼마나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트럭은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이기 때문이다. 하이쎈은 이러한 관점에서 제법 설득력 있는 결과물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지렛대를 통해 거대한 물체를 움직일 방법을 고민했다면 오늘날 자동차 기술은 그 힘을 얼마나 쉽고 편안하게 다룰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트럭을 더 크게 만드는 것보다 트럭 운전을 더 쉽게 만드는 일. 하이쎈이 보여준 변화의 방향이다.
타타대우 하이쎈의 가격은 7,000만원대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