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다원화, 자동차도 하나의 이동수단일 뿐
-이동에 필요한 것은? 에너지, 운전 부담의 해소
2017년 프랑크푸르트(이하 IAA)모터쇼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전기모터를 향한 변곡점(point of inflection)"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학에서 변곡점이란 위아래 오목과 볼록인 선이 반대가 되는 점을 말한다. 변곡점을 중심으로 앞뒤가 일부 겹치다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상승세가 커진다. 특정 판도를 뒤바꾸는 제품이 "게임 체인저"라면 비슷한 제품이 앞다퉈 경쟁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확인될 때를 변곡점이라 부른다.
2017 IAA가 정확히 그랬다. 디젤 게이트로 몸살을 앓았던 유럽인만큼 주요 제조사들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의 대상물은 예외없이 전기차였다. 오는 2025년까지 전기차의 선두가 되겠다는 폭스바겐그룹, EQA 컨셉트를 중앙에 배치한 벤츠, "i" 브랜드에 다양한 전기차를 넣겠다는 BMW 등은 물론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미니 전기 컨셉트, 스마트 포투 일렉트릭 등 수많은 완성차기업들이 앞으로 전기를 또 하나의 주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현했다.
전기차를 앞세웠다고 기존 내연기관을 줄인다는 건 결코 아니다. 현장에서 만난 폭스바겐그룹 울리히 아히크혼 R&D 총괄은 "전기차를 내세웠다고 모든 차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건 아니며, 2030년까지 폭스바겐그룹 산하 모든 브랜드가 내연기관에 여전히 집중하되 일부 제품은 전기차만 생산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기술 개발로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조금씩 늘어나고 성능도 좋아질 것"이라며 "2020~2025년에는 업체 간 가격경쟁으로 구매비용이 보다 저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충전 인프라가 구축되면 운행 및 유지보수 비용 면에서 전기차가 주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기동력을 활용하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동의 자유로움 때문이다. 딕 아놀드 BMW "i" 브랜드 제품 총괄은 "자동차는 앞으로도 이동수단이지만 이동거리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모빌리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이 때 손쉽게 활용 가능한 동력이 바로 일렉트릭 엔진, 즉 전기동력"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중요한 건 "이동의 목적"이며, BMW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목적"을 어떻게 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강조한다. "i" 브랜드 산하에 주행거리를 늘린 i3와 성능이 강조된 i3s 등을 선보인 배경이다. 하지만 달리는 즐거움도 포기할 수 없는 만큼 "X7 i퍼포먼스 컨셉트"도 등장시켰다.
또 다른 흐름은 앞으로 치열한 자율주행 경쟁을 예고했다는 점이다. 벤츠가 자신들의 전시장 외벽에 자율주행을 의미하는 "Autonomous"를 선명하게 표현한 게 대표적이다. 아우디 또한 사람의 운전이 필요없는 일레인 자율주행 컨셉트를 내놨고, 르노는 자율주행 레벨4에 해당하는 "심비오즈"를 앞세웠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르노의 토팡 로랑(Taupin Laurent) 자율주행기술 총괄은 "현재는 사람과 자동차가 필요할 때 운전을 교차하는 3단계 수준이지만 르노는 운전자 조향이 없어도 되는 4단계를 추구한다"며 "2020년부터 고속도로에서 실차 시험을 진행한 후 난이도를 점차 높여 모든 도로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후 법규가 풀린다는 가정 하에 2023년부터 판매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자율주행이 추구되면서 당연히 커넥티비티(Connectivity), 즉 연결성도 중요 항목임은 틀림 없다. 폭스바겐의 자율주행 컨셉트 세드릭(Sedric)은 전기 동력을 쓰되 자율주행이 동시에 추구된 제품이다. 2020년까지 상용화가 목표로, 요한 융비르트(Johann Jungwirth) 폭스바겐그룹 디지털전략 총괄은 "세드릭은 언제든 탑승 인원 확장이 가능한 공간 중심의 이동 수단"이라며 "자체 설립한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인 모이아(MOIA)에게 제공되는데, 많은 정보를 외부로부터 받아야 하는 만큼 연결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폭스바겐그룹은 그간 핵심 사업인 자동차 제조에서 벗어나 통합 이동수단 서비스 제공업체로 체질을 바꿀 것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이른바 제조물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이를 공유사업에 활용, 모든 이동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방향의 미래 전략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물론 유럽 완성차회사들이 전기 동력을 활용한 자율주행에 적극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만큼 협력 업체의 기술 완성도가 충분히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바스프가 전기차의 효율 향상을 위해 경량화 소재를 제공하고, 세계 최대 부품기업 보쉬는 전기 동력 기반의 자율주행 기술을 제공, 해마다 성장하는 중이다. 보쉬그룹 폴크마 덴너 회장(Dr. Volkmar Denner)이 "미래의 모빌리티에 있어 우리는 이미 좋은 위치에 있다"고 말한 것도 자율주행 솔루션을 이미 확보하고 있어서다. 특히 그는 "사고, 스트레스, 배기가스 없는 모빌리티는 자동화(automation), 전기화(electrification), 커넥티비티(connectivity)를 통해 실현될 것"이라며 "지금은 모빌리티의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2017 프랑크푸르트모터쇼는 전기 동력의 일상화와 자율주행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변곡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대체적으로 2030년이면 소비자들이 내연기관과 전기차 가운데 하나를 주저 없이 선택하는 시점으로 내다봤고, 자율주행은 그 이전에 일반 도로 주행이 가능한 상용화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이런 예측 하에 유럽 내 완성차기업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빠르게 지능화되는 시대에도 자동차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말이다.
BMW 딕 아놀드 "i" 브랜드 제품 총괄에게 "자동차의 미래 주도권은 누가 가져가겠느냐"고 직접적으로 물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앞으로도 자동차회사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왜냐하면 자동차를 통해 IT기업이 제공하는 것은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이며, 흔히 말하는 이동에 관한 통합 서비스를 제공할 곳은 이동 수단을 만드는 자동차회사가 가장 잘 한다고 말이다. 오랜 시간 제조업으로 인식돼 왔던 자동차산업이 이제는 제조를 넘어 통합 이동 서비스 기업으로 진화하는 셈이다.
프랑크푸르트=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