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에 밀리며 비중 13%까지 떨어져
-세단 주력은 준대형으로 넘어가
지난 2004년 국내에서 연간 108만대의 자동차가 판매됐을 때 중형 세단은 19만9,000대로 18.4%의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적으로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가 중형 세단이었고 ‘중형 세단=국민차’로 인식됐다. 나아가 2010년에는 내수에서 중형 세단의 비중이 20%까지 치솟아 ‘중형 세단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중형 세단 비중은 지난해 14.3%로 곤두박질쳤고, 올해는 9월까지 13%로 떨어졌다. 그나마 택시와 렌터카 등의 수요 5만4,000대 가량을 제외하면 순수 자가용 수요는 8.4%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중형 세단이 몰락해가는 중이다.
물론 중형 세단의 위기는 소비자들이 SUV로 몰려가고 있어서다. 생활 패턴의 변화에 따라 SUV는 소형, 중형, 대형을 가리지 않고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SUV 시장은 2011년 이후 연평균 약 16% 성장했다. 지난해는 연간 45만대까지 성장해 전체 자동차시장 내 점유율은 34%에 달했다. 올해도 9월까지 내수시장에서 국산 소형 SUV는 총 9만8,122대를 팔아 전년 동기 대비 37.3% 증가했으며, 대형 SUV도 35.4% 늘어난 2만9,140대에 달하는 등 인기를 구가 중이다.
하지만 중형 세단 구매층이 모두 SUV로 이동한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세단의 선택 등급을 한 단계 높였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분석이다. 대표적인 차종이 현대차 그랜저다. 그랜저는 올해에만 이미 10만대를 넘어섰다. 일부에선 변변한 경쟁 차종이 없어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하지만 기본적으로 중형 세단 수요가 고급화 됐다는 점이 인기의 원동력이다.
사실 세단 구매층의 고급화는 이미 진행되던 사안이다. 지난해 르노삼성이 SM6를 쏘나타와 그랜저 사이에 위치시키며 나름 탄탄한 이미지(?)를 구축한 것도 세단 수요 고급화를 읽어낸 덕분이다. 특히 렌탈 및 택시 수요에 집중된 현대차 쏘나타와 달리 개인 승용 부문을 집중 공략해 성과를 이뤄냈다. 그 즈음 현대차는 중형과 확실하게 선을 그은 그랜저를 준비했고, 제품이 등장하자 중형 세단 수요가 그랜저로 몰려갔다. 다시 말해 시장 흐름이 그랜저 인기를 부추긴 가장 중요한 인자라는 의미다.
중형 세단의 위기가 찾아오자 긴장한 곳은 르노삼성이다. 중형 세단은 여전히 주력이고, 이를 대체할 만한 제품도 거의 없어서다. 실제 SM6 1~9월 판매는 3만2,000대로 전년 대비 20.9% 하락했다. 그랜저가 SM6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면 쉐보레 말리부는 2만6,000대로 지난해 대비 11.6% 상승했지만 존재감은 여전히 높지 않다. 따라서 중형 세단이 위축될수록 제조사마다 희비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중형 세단을 대체할 SUV와 준대형 세단이 존재하는 곳은 미소를 머금지만 그렇지 못한 제조사는 공백 메우기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기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현대차가 최근 소비자 참여 방식으로 개발한 "쏘나타 커스텀 핏(Custom-Fit)"이 대표적이다. SUV와 준대형으로 이동하려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 소비자를 직접 개발에 참여시켰다. 핵심품목부터 트림구성, 최종 제품명까지 기획하고 선정했다. 평소 주행 환경에 따라 "마이 시티 에디션(My City Edition)"과 "마이 트립 에디션(My Trip Edition)" 두 가지를 제공하는데, 모두 소비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그랜저와 SUV로 쏘나타 수요가 분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다른 수요층을 쏘나타로 끌어와 중형 세단 위기를 막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이미 판매되는 제품의 대체재로는 가능하겠지만 중형 세단 전체의 시장 규모를 늘리는 역할 말이다. 그럼에도 중형 세단을 잊지 않는 것은 이런 노력이 시장 규모 축소의 속도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