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생산 및 수출 강국, 내수 뒷받침 점차 줄어
-판매와 생산 경쟁 인식 이제는 달라져야
지난 2015년 11위였던 한국의 자동차 내수 시장 규모는 이듬해 183만대로 10위로 올라섰다. 규모로 보면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멕시코(121만대), 이탈리아(172만대), 스페인(121만대)보다 시장이 큰 셈이다. 그나마 꾸준히 내수 시장을 키운 덕에 국내 자동차산업이 버틸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7년 국내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411만대에 달한다. 또한 국내 판매된 183만대에서 국내 생산 물량은 154만대이고, 나머지 29만대는 해외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수입됐다.
경쟁이 치열한 승용차로 시각을 좁혀보면 같은 기간 내수 판매는 140만대에 이르고, 이 가운데 23만대가 수입돼 국내 생산 및 판매는 117만에 그친다. 결과적으로 한국 땅에서 생산된 411만대 가운데 255만대가 해외로 수출됐다. 주력 수출 지역은 미국, 캐나다 등의 북미와 서유럽, 남미 등이며 비교적 한국보다 내수 규모가 큰 곳에 많이 내다 팔았다. 시장 규모가 커야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공간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자동차산업은 불가피하게 내수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꾸준히 해외 현지 공장 확대를 추구했음에도 연간 400만대가 넘는 국내 생산 물량은 한국 내에 있는 9곳의 완성차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그 곳에서 한국인들이, 한국인을 위한 차 이외에 다른 나라 소비자를 위한 제품도 부지런히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수출 주도형 한국 자동차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불릴 만큼 파생효과가 크다. 기본적으로 협력사 네트워크가 방대하고 그에 따른 일자리도 적지 않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제조업 6만8,000개 가운데 4,600개의 기업이 자동차 제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제조업 일자리 294만명 가운데 34만명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외 전체 수출액의 13.7%, 생산액의 13.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덕분에 지금은 인도에 자리를 내줬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6번째로 자동차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그래서 수출 주도형 한국 자동차산업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보호주의" 득세다. 대표적으로 시장 규모가 큰 미국이나 캐나다, 서유럽 등이 관세 장벽 등을 세워 자국 보호에 나서면 한국은 직격탄이 불가피하다. 실제 자동차 최대 시장 가운데 하나인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가 보호막을 치면 수출 물량은 줄고 공장 가동률이 떨어진다. 이는 곧 근로 시간의 축소를 의미하고 소득 또한 감소로 연결된다. 따라서 그간 미국을 중심으로 자동차 보호주의 조치가 나올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고, 수출이 줄어들 때마다 국내에서 개별소비세를 내렸다. 생산을 지속해야 근로자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만큼 수출 부진을 세금 감면에 따른 내수 확대로 막았던 셈이다.
그럼에도 최근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국내 시장이 더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적어서다. 대당 2.3명이 선진국 수준의 2.0명 이하로 내려갈 것이란 낙관론을 전제해도 400만대가 넘는 국내 생산 물량을 한국이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지도 않겠지만 공유 경제와 대중교통 발전이 스마트기기 사용을 원하는 소비자를 흡수하면서 자동차 구매 욕구를 더욱 낮추는 점도 부담이다 결국 한국 자동차산업이 지속 생존할 길은 더 많은 해외 수출 외에 달리 정답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보호무역 기조가 이어지면서 한국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해외로 수출되는 완성차 255만대 가운데 95만대는 태평양을 지나 미국 땅으로 건너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감기가 드는 구조가 점차 고착화되고 있다. 만약 미국이 보호를 더욱 강화하면 국내 완성차 공장의 일감이 줄어 더 많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대안으로 다른 나라에 집중하는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지만 미국을 대체할 시장 규모가 없는 게 걸림돌이다. 이미 미국을 앞선 중국은 합작 형태로 진출해 "현지 생산, 현지 판매" 중이어서 수출은 어림도 없다.
수출이 위기를 가져온 사례는 최근 한국지엠에서 찾을 수 있다. 유럽 쉐보레가 철수하며 수출이 줄어들자 미국 GM은 한국에서 50만대 생산 규모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시설과 인력을 줄이자는 주장이고, 한국지엠 노조는 생산 시설 폐쇄는 불가능하다고 맞선다. 그리고 정부는 생산 물량의 일정 부분 감소는 받아들이는 쪽으로 지원을 검토 중이다. 어차피 수출이 감소했다면 그래야 한다고 말이다. 게다가 한국지엠의 수출 감소를 내수에서 만회할 수 없음도 잘 알고 있다. 외형상 내수 규모가 큰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은 자동차산업에 있어 생산 및 수출의 절대 강국일 뿐 내수 강국은 아니어서다.
그래서 우리도 이제 생산 부문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 생산의 경쟁자가 해외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지엠 생산의 경쟁은 미국 GM이고, 현대차 국내 생산의 경쟁 또한 미국 앨라배마 및 유럽 현지 공장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국 자동차산업의 생산 경쟁은 세계 여러 국가라는 점도 말이다. 실례로 한국지엠이 지난해 노사 갈등을 겪을 때 미국 GM 노조는 "한국 내 생산 물량을 미국 공장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 반면 한국지엠 노조는 같은 지붕 아래 "그럴 리 없다"는 순진함(?)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미국 GM 노조 또한 같은 근로자로서 상생을 도모한다는 바램의 설명을 내놨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어쩌면 현재 한국지엠의 위기를 자초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미국 GM은 노조가 생산에 대해선 공장 및 국가별 경쟁임을 분명히 인식한 반면 우리는 그들을 같은 가족으로 인식한 것에서 차이 말이다. 결국 공장에서 생산을 늘리려면 이제는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해외 생산 물량을 경쟁적으로 빼앗아 오자는 얘기다. 그리고 가져오는 방법은 누구보다 생산 현장이 잘 알고 있다. 이른바 "생존권 사수"로 표현되는 물리적인 충돌은 전혀 불필요한 요소라는 걸 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