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자동차 구매, 사전 계약자에 대한 정의<촉수엄금>

입력 2019년09월29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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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적으로 구매자 아니어서 리콜 통보 제외
 -법조계, 결함 내용 정식 계약 때 반드시 고지 해야

 영어 사전에서 "리콜(recall)"은 "기억해 내는 것" 또는 "생각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다시 부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 "리콜"은 경제용어로 "결함 보상"을 의미한다. 기업이 판매한 제품 가운데 이상이 있으면 판매자가 직접 회수, 조치하는 제도를 "리콜"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콜"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전제 조건이다. 즉 리콜은 제품이 판매된 이후에 내려지는 조치여서 판매되지 않았으면 리콜 적용 대상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리콜 논란이 발생했다. 자동차회사들이 앞다퉈 펼치는 사전 계약이 일으킨 논쟁이다. 쉽게 보면 "사전 계약자"를 법적 보호 대상인 정식 소비자로 볼 수 있느냐는 갑론을박인데, 법조계에선 "사전 계약자"를 "정식 계약"이 체결된 것이 아니라 "사겠다"는 의사만 내비친 것으로 해석해 리콜 통지 대상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국내 자동차관리법 또한 자동차 사전 계약자는 정식 소비자로 구분하지 않아 리콜 통보 대상이 아니다. 제품을 아직 사지 않았으니 판매자가 회수할 제품도 없어서다.

 그러나 민법상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사전 계약자라 하더라도 최종 판매 과정에선 해당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법무법인 주한의 유용관 대표변호사는 "자동차관리법 8조는 소비자 인도 이전에 발생한 고장 또는 흠집 등 하자에 대한 수리 여부와 상태 등을 구매자에게 고지하도록 돼 있다"며 "수입 과정에 있는 자동차의 사전 계약자에게 리콜 내용을 사전에 알릴 의무는 없지만 최종 계약 과정에서 제품 결함 내용을 반드시 고지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한다. 법무법인 한민앤대교의 조석만 변호사 또한 비슷한 의견을 개진했다. 조 변호사는 "리콜은 판매된 이후의 문제를 해결하는 조치지만 구매 예정자에게 판매자가 결함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 것은 계약해지 사유도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논란이 벌어진 배경은 최근 판매되기 시작한 벤츠 GLE 때문이다. 지난 5월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판매되다 에어컨 호스 불량으로 글로벌 리콜이 됐고, 앞서 8월에 수입사가 정부에 리콜 보고를 완료했다. 이후 국토부는 자동차관리법 31조가 규정한 절차에 따라 결함 사실을 수입사가 소비자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하지만 여기서 전제는 해당 차종의 구매자가 아직 없었다는 점이다. 수입되는 과정이어서 구매자는 없고 사전 계약자만 있었던 만큼 벤츠는 규정에 따른 일반적인 리콜 공지만 했을 뿐 사전 계약자에게는 별도의 리콜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식 계약 체결 때 구매자에게 해당 내용을 자세히 고지하고 리콜 문제도 출고 전에 완료한 뒤 이를 받아들인 소비자에게 제품을 인도,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는 완료했다.   

 그럼에도 사안이 주목을 끈 것은 사전 계약자에게 해당 내용을 알리는 시점 때문이다. 일반적인 리콜 공지 때와 달리 계약 시점 때 고지하는 것 자체가 구매자의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사전 계약을 했어도 리콜 공지 시점에 개별 고지를 함께 했어야 한다는 의견과 차라리 정식 계약 전에 상세 고지하는 게 소비자 구매 판단에 보다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엇갈리는 중이다. 이를 두고 국토부는 사전 계약자도 일반적인 리콜 공지 때 함께 통보하도록 규정을 바꾸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리콜 공지 시기와 정식 계약 시점의 시차가 크면 소비자가 잊을 가능성도 있어 판매 시점에 자세한 고지를 해주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하나의 논란은 리콜 보고 시점의 형평성이다. 수입차는 배에 실린 상태에서 통관이 이뤄지는 순간부터 리콜 보고 적용 시점인 반면 국산차는 공장에서 생산돼 출고센터로 옮겨진 후 소비자에게 인도되는 과정부터 리콜 보고 적용 시점이다. 수입차와 국산차가 모두 출고센터에 모였다가 소비자에게 건네지는 과정은 같지만 수입차는 출고장에 쌓이기도 전에 리콜 보고 대상이고, 국산차는 출고장에 적재된 후 소비자 인도되는 과정이 곧 리콜 보고 시점이 "차별"에 해당된다는 게 수입차 업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논란 여부를 떠나 중요한 것은 여전히 "리콜"에 대한 선입견이다. 국내에서 "자동차 리콜"은 늘 부정적 의미로 활용되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기업은 "리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문제가 생겨도 가급적 외부로 알리지 않는 것에 익숙해 있다. 그럴수록 문제 해결 가능성은 낮아지고 피해는 소비자에게 되돌아온다. 반면 리콜에 적극적이면 문제의 사전 차단 효과가 있어 오히려 이용자인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실제 "리콜" 제도가 도입된 배경도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로 끝났지만 이번 사안 덕분에 리콜 규정에 항목 하나가 추가될 예정이다. 국토부가 자동차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는데, 한 마디로 "사전 계약자"도 제작사로부터 리콜 사실을 문제 발생 시점부터 개별 통지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제도는 정부가 바꾸는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리콜 적용 보고 시점과 리콜에 대한 인식 변화도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권용주 편집위원(국민대학교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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