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에너지, 세금, 이용자 등 고려 사항 많아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 가운데 여러 항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의 변화를 예측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인 변화의 항목을 언급할 때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관점은 모든 부문에서 자동차산업의 대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위기를 지나면 지금보다 엄청난 기회가 온다고 전망한다.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IHS에 따르면 올해 코로나 영향에 따른 글로벌 완성차 판매는 7,300만대 수준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무려 1,400만대가 줄어든다. 이동이 억제되니 소모품으로서 자동차의 감가율 하락폭도 줄기 마련이다.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차를 바꾸려는 욕구가 발현되지만 이동의 멈춤으로 주행거리는 짧아지고 소득 또한 감소하는 만큼 차를 바꾸려는 경향도 낮아지는 탓이다.
-이동의 욕구는 오히려 늘어
기본적으로 이동은 생존 욕구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제 아무리 온라인이 생활패턴을 바꾼다 해도 인간의 DNA에는 이동의 본능이 숨어 있다. 불과 1만년 전 농경 사회를 통해 정착하기까지 30억년 동안 인류는 떠돌아다니며 음식과 숙박을 해결했다. 따라서 인간 본연의 DNA가 ‘여행’이라는 형태로 발현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이자 바이오및뇌공학과 정재승 교수는 최근 방영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뇌는 30억년 전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여전히 생존을 위한 이동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동은 억제될 수 없는 욕망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동을 억제하는 것은 그만큼 감염병의 위험이 높아서다. 따라서 감염 위험을 피하되 이동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은 이동의 거리와 이동 수단의 활용 방식을 바꾸기 마련이다. 장거리보다 단거리, 대중교통보다 개인 이동 수단(자가용)의 선호도 증가가 대표적이다. 사람 간의 접촉을 피하라니 대중교통보다 자가용 이동이 늘어나고, 해외를 갈 수 없으니 국내 여행이 고개를 드는 추세다.
-이동에 기댄 세금과 일자리
여기서 정책적 고민은 일자리, 세금, 환경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기름에 부과된 교통에너지환경세로 거둬 들인 세금은 15조3,000억원에 달한다. 물론 기름에는 교통세 외에 자치단체가 가져가는 주행세도 포함돼 있어 유류 관련 세수는 연간 24조원 가량에 이른다. 이동이 억제돼 자동차 주행거리가 짧아질수록 유류세도 줄어드는 구조여서 코로나19로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현재 상황에선 오히려 운행을 장려하는 게 미덕(?)이다. 세금이 많이 들어와야 SOC 등에서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재난지원금 등도 해결할 수 있어서다.
더불어 자동차 판매 또한 증가할수록 세금과 공장의 일자리가 지켜진다. 기본적으로 2,580만원짜리 쏘나타 한 대에 부과된 세금 항목은 개별소비세, 교육세, 부가세, 취득세 등이다. 이들 세금을 모두 합치면 540만원 가량이다. 현재 한시적으로 개별소비세율을 낮춘 상태지만 소비자 가격의 20%에 달하는 세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따라서 정부 입장에선 자동차 판매도 늘려야 충분한 세금이 확보되는 구조다. 게다가 자동차 신규 등록으로 자치단체에 돌아가는 세금은 연간 8조원 가량에 이른다.
또 하나는 일자리다.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3만여개의 부품으로 구성돼 협력사가 적지 않다. 완성차 공장 가동 중단은 5,000여개의 협력사에 영향을 미쳐 수많은 일자리가 위기에 처한다. 스마트폰 생산에 필요한 일자리 규모와는 양적으로 다른 셈이다. 최근 산업은행이 한국지엠을 지원한 것도 자동차산업의 특성에 따른 수많은 고용 때문이며, 쌍용차 위기를 예의주시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포스트 코로나, 운행 확대에 초점
따라서 정부로선 어떻게든 자동차 판매가 늘고 이동 거리 또한 증가해야 세입이 보장된다. 이런 상황에서 여행의 본능이 폭발 직전에 있으니 국내 자동차 여행에 초점을 맞추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물론 자동차 이동 증가는 어두운 면도 있다. 교통정체가 증가하고 배기가스도 또한 많아져 환경보호에 역행한다. 그럼에도 막대한 재정투입은 세입 증가로 메울 수밖에 없어 자동차 부문에선 이동의 확대에 초점을 맞추려는 움직임이 적이 않다. 이 과정에서 환경은 일단 뒤로 미루는 모습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자동차 정책은 세금과 환경 문제의 공존을 위해 구매는 장려하되 운행은 억제하는 방식을 지향해왔다. 구매 장려는 세금 의존에 따른 결과이고 운행 억제는 환경 때문이다. 그 결과 전국의 자동차는 2020년 기준 2,370만대, 1대당 2.2명에 이를 만큼 빠르게 확장됐지만 연간 평균 주행거리는 2002년 2만2,000㎞에서 2018년은 1만4,000㎞로 감소했다(한국교통공단). 대신 버스와 지하철 등의 확장이 일어나 이동 수요를 메웠다. 또한 주행거리 감소와 효율 향상에 따른 1대당 연간 사용 연료 감소는 전체 등록대수 증가로 세입 규모를 감당해 왔다. 자동차 증가율이 도로 확장 속도보다 높아 곳곳에서 지정체가 일어나지만 구매 억제를 하지 않았던 것도 세입 감소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을 필요로 하는 코로나 위기는 "운행 규제" 대신 "운행 확대"를 요구하는 셈이니 환경 부문은 벌써부터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를 위해 친환경차 장려를 권고하지만 친환경차는 세금을 오히려 지원해주는 대상이어서 가파른 확대는 오히려 재정에 부담으로 다가오는 형국이다. 결국 환경에는 반드시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을 코로나19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