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랜드로버 디펜더와 다른 '그리나디어'

입력 2020년08월19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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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법원, 디펜더 디자인 침해 논쟁서 "그리나디어" 손 들어 줘

 2000년 이후 새롭게 시장에 진출한 대부분의 자동차제조사가 전동화를 앞세운 것과 달리 영국 화학기업 이네오스(INEOS)의 자동차사업부문이 처음 공개한 정통 오프로더 "그리나디어(Grenadier)"는 당당하게(?) 내연기관을 탑재했다. BMW의 직렬 6기통 트윈파워 터보 가솔린 및 디젤 엔진을 심장으로 장착한 것. 차명인 "그리나디어"는 영국 보병의 "근위병"을 의미한다. 그 만큼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리겠다는 창업주 짐 래트클리프 회장의 의지를 이름에 반영했다. 

 그런데 1998년 화학기업으로 시작한 이네오스가 자동차사업에 뛰어든 시점은 불과 3년 전 이다. 평소 자동차 모험을 좋아하는 래트클리프 회장이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강력한 오프로더의 부활을 추진한 게 배경이다. 이듬해 그는 영국 디자인에 독일 기술을 접목시키며 200명의 전문 엔지니어를 투입, 계획을 실천해 나갔다. 그리고 지난해는 생산을 위해 자동차종합부품기업 마그나 슈타이어와 손잡았고 올해는 새 차의 외관을 공개했다.
 

 외관을 발표하자 그리나디어는 곧바로 논란에 휩싸였다. 랜드로버 디펜더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가진 탓이다. 그러나 디자인을 담당했던 토비 이큐어는 이미 단종한 제품의 디자인을 베꼈다는 지적에 대해 해석의 관점이 다르다는 설명을 내놨다. 요트를 비롯해 다양한 럭셔리 제품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린 토비는 "공격적인 모습의 오프로더를 강조했을 뿐"이라며 "눈에 익숙하다고 새롭지 않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결국 영국 법원에 이네오스그룹을 대상으로 디자인 상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영국 특허법원은 이네오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재규어랜드로버가 보호하려는 현재 디펜더와 과거 디펜더를 닮은 그리나디어가 소비자 시각에선 분명 구분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즉 재규어랜드로버가 보호하려는 건 지금의 디펜더 디자인에 한정할 뿐 단종한 구형까지 상표권으로 보호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제품 설계 상 차이가 없더라도 일반 소비자에게 보여지는 건 디자인이고, 시각적 측면에서 두 차의 외관은 비슷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연히 재규어랜드로버는 반발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여러 시장에서 디펜더 외관은 이미 디자인 특허가 보호된다는 성명으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비록 단종제품이라도 디자인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법원이 무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디펜더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법원 판단에 힘이 실리기도 한다. 랜드로버는 1948년 다용도 4WD로 개발, 별다른 디자인 변화를 거치지 않다가 1989년 디스커버리를 내놓은 후에야 비로소 "디펜더"라는 차명을 썼다. 그리고 2020년에 들어서야 2세대를 선보였으니 말이다.

 이네오스의 래트클리프 회장은 각진 정통 오프로더인 디펜더의 모습이 도심형으로 바뀌는 게 싫었던 만큼 과거 디펜더의 감성을 새 차에 담았다는 후문도 들린다. 게다가 디자인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기간이 2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00년 이전의 디펜더를 닮은 그리나디어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사람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겠지만 익숙한 모습이 오히려 새로울 수 있다는 주장에 영국 법원도 동의한 셈이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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