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배출가스, 벌금 없애자는 대통령 판단에 법원 제동
트럼프 대통령의 석유 사랑(?)에 미국 항소 법원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제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기후변화를 막아보려는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겠다는 법안 자체가 시의 적절하게 검토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기후변화를 애써 외면하며 지난해 11월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이 미국 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된 셈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연비 규제 완화 방안은 석유 및 자동차기업을 옹호하는 동시에 전임 오바마 대통령의 파리기후변화협약 가입을 깎아내리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 자동차기업의 내연기관 생산을 지속 또는 늘리게 만들어 석유 소비를 촉진시킬수록 석유 및 자동차 공장의 근로자를 지지자로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담겨 있어서다. 동시에 "오바마 지우기"라는 정치적 판단을 글로벌 관심사인 기후변화까지 끌어들이며 "탈퇴"를 선언했다.
-ℓ당 평균효율 "23.2㎞ vs 17.2㎞"
지난 2012년 오바마 정부는 2025년까지 미국 내 자동차 평균효율을 ℓ당 23.2㎞로 높이는 규제를 도입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효율 향상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자동차회사가 기술 개발에 매진해 글로벌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제조사가 이를 맞추지 못하면 일정 기준의 거리에 따라 14달러의 벌금을 부담하도록 했다. 당시 미국 내 자동차회사는 픽업 등의 대형 SUV가 많이 판매되는 시장 특성을 고려할 때 목표 자체가 무리한 수준이라며 반발했지만 오바마 정부는 연평균 효율을 5%씩 개선할 수 있다는 환경단체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후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 상황은 급변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패널티 금액을 원래 수준인 5.6달러로 되돌렸다. 그리고 평균효율도 2026년까지 ℓ당 17.2㎞로 완화했다. 오바마 정부가 설정한 ℓ당 23.2㎞에서 무려 6㎞를 줄여버렸다. 덕분에 미국 자동차업계는 연간 10억 달러의 규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환영했다.
-제조사의 엇갈린 친환경 전략, 선점이냐 후발이냐
하지만 여기서 미국 내 각 자동차회사의 전략이 엇갈렸다. 트럼프의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결국 친환경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판단한 GM은 오바마 시절의 배출가스 기준을 따르기로 결정, 다양한 전동화 차종에 집중했다. 최근 캐딜락이 BEV 버전 "리릭"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FCA 등은 규제 비용 절감을 환영하며 내연기관의 최대 지속을 추구했다. 친환경 선점보다 수익에 방점을 두되 규제가 제기되면 친환경을 따라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항소법원은 평균배출가스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패널티 금액을 인상하는 방안을 없애려는 트럼프 법안에 제동을 걸었다. 과징금 인상 철회 검토가 시의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법원 판단의 근거지만 실제로는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환경단체들의 규제 완화 반대에 손을 들어준 형국이다.
그러자 미국 내 자동차기업의 표정도 나눠졌다. 미국 내에서 처음으로 볼트(VOLT) BEV 등을 내놓으며 일찌감치 전동화 전략을 추진했던 GM은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비 규제 완화"라는 정치적 판단이 단기 이익은 되겠지만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인 미래 수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전동화로 바꾸려는 전략은 탄력을 받게 됐다. 반면 FCA는 마땅한 전동화도 없이 오히려 규제 비용의 부담만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둘을 놓고 판단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판단이란 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최소 비용으로 친환경 흐름에 동참하려는 것 또한 일종의 전략이다. 때로는 천천히 전환하는 게 오히려 지속 가능성을 높일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와 달리 "글로벌 기후변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인류 과제가 화두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전동화의 속도를 높이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게다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밀접 없는 이동을 촉진시키며 사적 공간으로서 자동차 이용을 늘리는 중이다. 그럴수록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받는다. 세계 최강 대국 미국 대통령도 꺾지 못할 정도이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