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따른 자동차산업 위기에 파업이라니
현대차의 임금협상 교섭이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조만간 노사가 잠정합의안 도출도 가능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노조 요구안에 회사가 성과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협상에 물꼬를 텄다. 시니어 촉탁(퇴직자 대상 단기 고용) 배치 시 전 소속 부서 배치 여부를 놓고 입장차가 있지만 양측 모두 해결하자는 의지가 강하다.
업계에서는 이번 현대차의 노사협상 결과를 비교적 낙관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수출 물량이 급감하면서 노사 모두 자동차산업 자체가 위기에 직면했음을 인식한 탓이다. 실제 노조는 그동안 늘 꺼내 들었던 파업 관행도 깼다. 파업 찬반투표도 없었고 조정쟁의 신청도 하지 않았다. 위기 때는 실리에 집중하겠다는 의도에서다.
반면 노조는 돈보다 고용 안정에 초점을 맞췄다.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 등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다. 노사가 ▲전기차 전용공장 논의 ▲총고용 보장 및 부품사 상생방안 ▲직무전환 교육 등에서 합의를 본 배경이다.
이와 달리 임단협을 진행 중인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은 위기 의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협의가 지지부진하자 두 회사 노조 모두 실력 행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지엠 노조는 이달 초 협상결렬을 선언하며 조합원 7,800명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해 89.5%의 찬성을 얻어냈다. 이를 계기로 종앙노동위원회에 쟁위조정 안건을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파업에 들어가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신청이 반려돼 일단 주춤한 상태다.
르노삼성 노조도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금속노조) 가입을 추진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를 놓고 내부 찬반투표를 벌였지만 찬성율이 정족 수에 미치지 못해 부결됐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가입을 표면적으로 내세우며 임단협은 10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양 사 모두 외국계 자동차회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특히 한국지엠 노조의 파업 분위기는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올해 초 트레일블레이저 출시 때 노조 또한 "적극 협력"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9년 임단협도 잘 마무리 됐지만 문제는 올해 임단협에서 불거졌다. 기본급 12만304원 인상, 통상임금 400% 및 600만원의 성과금 지급 등이 협상의 발목을 잡았다. 이런 요구는 흑자 전환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게 회사의 판단이어서다.
그럼에도 노조 제안에 한국지엠은 고정지급분 제공 등의 중재안과 함께 2년 주기 임금협상을 제시했다. 매년 임단협이라는 소모적인 협상을 줄이되 중장기적인 사업 계획 수립으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차원이다. 노조 입장에서도 최소 2년 간은 임금과 성과금을 보장받고 안정적인 고용 유지가 가능한 만큼 전향적인 제안인 데다 소모적 논쟁이 사라져 생산성 증가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한국지엠 노조는 상위 노조단체 규약 위반이라는 점을 들어 논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GM과 포드를 비롯해 독일에서도 시행 중인 방식을 거부한 셈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도 다년제 협상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한국이라고 도입하지 못할 이유는 별로 없다. 또한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 7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생산직 노동자의 77.8%가 적절한 임단협 주기를 "2년 이상"으로 꼽기도 했다. 실제 근로자의 경우 노동 유연성과 함께 개인별 보상을 선호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노조가 주장하는 논리와 다른 결과다.
한국지엠의 다년제 거론은 현재 어려운 국면을 타개하려는 고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경영 정상화의 척도가 될 흑자 전환 달성을 앞두고 만 여명의 직접 고용 인력과 수십만 명의 협력사 간접 고용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노조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해 올해와 내년 성과급을 일부 지급하겠다고 수용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파업을 운운하니 정부 자금 투입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한국지엠과 르노삼성 노조는 현대차 노조를 반면교사 삼았으면 한다. 당장의 성과급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일자리 확보이고, 이를 통해 생산성 등이 향상되면 성과급은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어느 것이 보다 중요한지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선택이 노사 모두 상생을 만들어 줄 수 있는지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