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정부와 테슬라, 보조금 눈치 싸움의 결말

입력 2021년02월13일 00시00분 오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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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라 모델3 보조금 싹쓸이 논란에 보조금 상한제 대두
 -6,000만원 기준에 5,999만원으로 대응한 테슬라
 -올해 신차 대거 준비한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부담 가중

 테슬라코리아가 지난해 1만대 이상 판매한 모델3의 주력 트림, 롱레인지의 가격을 5,999만원으로 낮췄다. 차량 가액 6,000만원부터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절반만 지급하는 전기차 보조금 상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번 결정으로 사실상 테슬라 모델3를 겨냥해 보조금 상한제를 도입한 정부 입장에선 살짝 뻘쭘한 상황이 됐다. 전기차 가격 인하 유도라는 표면적인(?) 도입 취지는 이루게 됐지만 수입차로 빠져나가는 정부 보조금을 줄이겠다는 이면의 목적은 달성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3일 테슬라코리아는 모델Y 국내 판매를 시작하면서 가격을 스탠다드 레인지 5,999만원부터, 롱 레인지는 6,999만원부터, 퍼포먼스의 경우 7,999만원부터로 책정했다. 이와 함께 2021년형 모델3는 스탠다드 레인지 플러스 5,479만원부터, 롱 레인지 5,999만원부터, 퍼포먼스 7,479만원부터로 가격을 인하했다. 정부가 차량 가액 6,000만원부터 구매 보조금을 50% 삭감하자 주력 트림의 가격을 6,000만원 이하로 맞춘 것이다. 지난해 테슬라 열풍의 주역이었던 모델3 롱 레인지 판매 가격은 6,479만원에서 5,999만원으로 500만원 가량 낮아졌다.

 전기차 보조금 상한제 도입 주장은 지난해 모델3가 정부 보조금을 휩쓸면서 힘을 얻었다. 2020년 상반기에만 테슬라가 국내 전기차 보조금 약 900억원을 챙긴 것. 이는 전체 승용 전기차 보조금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국민 혈세가 과도하게 수입차 업체로 흘러들어 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산차 업계에선 보조금이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자국 기업에게 유리하게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 10월 보조금 상한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확정했다. 목적은 승용 전기차의 가격 인하를 촉진해 대중화를 실현함으로써 친환경 가치를 확산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발표된 환경부의 2021년 전기차 구매 보조금 상한제 지침은 차량 가액 6,000만원과 9,000만원을 기준으로 3단계로 차등화됐다. 부가세를 제외한 차량 가액이 6,000만원 미만이면 보조금 전액, 6,000만원 초과 9,000만원 미만인 경우 보조금의 절반, 9,000만원 초과 시에는 보조금을 미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경우 테슬라 모델3 롱 레인지(6,479만원)가 6,000만원 미만으로 책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자 환경부는 개정된 지침을 통해 보조금 산정 기준인 차량 가액에 부가세를 포함했다. 그래야 지난해 보조금을 몽땅 쓸어간 모델3 롱 레인지를 보조금 100%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슬라의 대응이 정부의 허를 찔렀다. 정부가 전액 보조금의 차량 가액을 6,000만원 이상으로 설정하자 차값을 6,000만원 이하로 낮춰버린 것이다. 그것도 보란듯이 5,999만원으로 책정했다. 기존 대비 가격을 500만원 가량 낮춰야 하는 결정이라 실행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봤던 선택이다. 거기에 새로 출시한 모델Y의 시작 가격도 5,999만원부터로 설정했다. 보조금 상한제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한편으론 충성 고객이 많은 테슬라 역시 보조금 없이는 여전히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보조금 상한제 지침이 알려지자 테슬라 커뮤니티에선 모델3 구매를 포기하고 현대차 아이오닉5를 기다리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테슬라코리아 역시 이러한 위기감을 읽고 주력 차종의 가격을 낮춘 것으로 풀이된다. 

 일단 정부 입장에선 전기차 가격 하락을 유도하겠다는 보조금 상한제 취지는 달성하게 됐다. 하지만 테슬라의 보조금 싹쓸이 방지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테슬라코리아의 결정으로 구매를 망설이던 모델3 롱 레인지 소비자들이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소비자 요구에 적극 대응한(?) 듯한 테슬라코리아의 행동은 모델Y 예비 소비자들의 호감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테슬라에 대한 충성도 역시 한층 상승했다. 

 반면 올해 신형 전기차를 대거 선보일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는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최대 경쟁자인 테슬라가 가격을 낮추면서 가격 경쟁력 확보가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선보이는 첫 전기차인 만큼 가격 인하 여력도 높지 않다. 이미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차 CV 일부 트림, 제네시스 JW는 보조금 절반 대상이며, 제네시스 eG80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9,000만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보조금 개편이 공통적으로 전기차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 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테슬라조차 구매 보조금의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보조금 수급 유무가 판매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일각에선 신차 효과를 앞세운 현대차그룹이 득세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첫 전기차인 만큼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그러다보니 테슬라의 보조금 독식을 막겠다는 이면의 목적도 현대차그룹의 역할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보조금 총량이 정해진 만큼 아이오닉5 판매가 증가하면 모델3 구매가 하락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보조금 상한제를 통해 현대차의 가격 경쟁력 확보를 어렵게 하면서도 현대차의 흥행에 정책 성공 여부를 맡긴 격이다. 정부와의 보조금 줄다리기에서 "가격 인하"라는 작은 공을 쏘아올린 테슬라, 그리고 그 공을 떠안게 된 현대차. 이들의 눈치싸움이 올 한해 전기차 시장에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궁금해 진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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