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 점차 의미 없어져
내연기관이 기름 1ℓ를 태워 만든 동력으로 멈출 때까지 갈 수 있는 거리를 흔히 "연료효율"이라고 하며 국내에선 해당 숫자를 자동차에 반드시 표시하도록 돼 있다. 과거에는 "공인연비"로 불렀지만 연비라는 게 운전자 및 도로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지금은 "표시연비"로 부른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비자들의 참고 사항일 뿐이다. 같은 개념으로 전자제품도 에너지소비효율 라벨을 제품에 부착한다. 등급을 매기는데 1등급일수록 효율이 높은 제품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전기를 에너지로 삼는 제품 중에 이동 수단이 있다. 바로 전기차다. 단순히 전자제품으로 보면 소비효율 라벨이 부착되겠지만 이동하는 물건인 만큼 내연기관과 마찬가지로 ㎾h당 주행 가능한 거리도 측정된다. 흔히 전비로 부르는 효율이다. 하지만 전비에 대해 보다 자세한 내용이 알려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같은 전기차라도 전비가 중요 항목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어서다. 서로 다른 전기차가 1회 충전으로 400㎞를 간다고 할 때 소비자 입장에선 가급적 전비가 좋은 차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 그러나 한국에너지공단이 공식적으로 표시하는 자동차표시연비에도 전기차는 아예 전비가 빠져 있다. 개별 전기차에는 라벨이 부착돼 있지만 상온과 저온 때 전비가 따로 기재되지 않아 개선이 요구된다.
전비가 주목되는 이유는 보조금 산정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전기차 구매자에게 지원되는 보조금은 연비보조금(420만원), 주행거리보조금(280만원), 이행보조금(50만원), 에너지효율보조금(50만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가장 많은 보조금은 연비보조금인데 산출 방식은 420만원에 연비계수를 곱해 구한다. 연비계수는 각 차종의 가중연비와 보조금 지급 대상 전체 차종의 평균가중연비를 더한 값이며, 특히 가중연비는 상온연비와 저온연비의 비율을 섞어 계산한다.
복잡하지만 의외로 수식의 개념은 단순하다. 현대자동차 코나 EV를 예로 들면 이 차의 복합전비는 5.8㎞/㎾h다. 64㎾h 배터리가 탑재돼 도심에선 ㎾h당 6.5㎞를 주행하지만 고속도로에선 5.1㎞에 머문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상온에서 405.6㎞, 저온에선 310.2㎞까지 주행할 수 있다. 이때 코나 EV의 연비계수는 상온 비중이 75%, 저온은 25%가 반영돼 계산된다. 여기에 전체 보조금 지급 대상 차종의 평균가중연비가 더해지면 연비계수가 만들어진다. 한 마디로 보조금을 지급할 때는 효율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반면 실제 소비자들이 구입할 때는 효율 파악이 쉽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연비 기준에 따른 보조금은 지난해 400만원에서 올해 420만원으로 높여 제조사의 효율 향상을 촉구했다.
나아가 지난해 주행거리보조금으로 설정했던 400만원을 올해는 280만원으로 줄이는 대신 에너지효율보조금을 신설해 50만원으로 책정했다. 기본적으로 1회 주행거리보다 전비가 높은 전기차에 보조금을 우선하되 월등히 높은 제품에는 추가로 50만원을 지급해 효율의 중요성을 담아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에너지소비효율에선 전기차의 상온 및 저온 전비를 알기 어렵다. 물론 소비자가 직접 배터리용량과 상온 및 저온 주행거리를 파악해 계산하면 전비를 알 수 있지만 이미 표시연비를 차에 부착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하는 게 효율적인 방법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1회 충전 후 주행거리는 물론 상온과 저온에서 ㎾h당 주행 가능한 거리(㎞)가 관심을 끌수록 제조사의 효율 높이기도 더욱 적극적일테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