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고정식과 탈착식의 전쟁
2,000만원짜리 배터리팩이 탑재돼 5,000만원에 판매되는 전기차가 있다. 그런데 전기차 구매와 동시에 배터리팩을 렌탈사업자에게 되팔아 2,000만원을 회수한다. 결과적으로 전기차 최종 구매 가격은 3,000만원이 되고 배터리팩은 이용료를 낸다. 만약 10년을 운행한다면 매월 16만원 정도의 렌탈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무이자 기준). 그런데 3년 사용 후 배터리를 반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납 때는 배터리팩만 별도로 떼어낼 수 없어 타던 전기차를 건네야 한다. 이때 렌탈 사업자는 처음 구매자가 샀던 차체도 함께 사들여 또다시 누군가에게 빌려준다. 물론 시간이 지난 만큼 전기차의 가치도 떨어져 다시 빌리는 비용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물론 배터리팩을 소유한 렌탈 사업자는 이용자에게 요금은 물론 이자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너무 비싸게 받으면 구매력이 저하되는 만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반납된 배터리의 활용 가치를 높이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 떼어낸 배터리팩을 전력 저장 장치로 전환시키고 이를 다시 판매해 일정 비용을 회수한다. 자동차에는 쓸 수 없어도 전기 담는 그릇 용도로는 여전히 쓸만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초기 배터리팩 이용자들에게 과도한 이용료를 부과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반값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팩 재판매가 아니라 배터리의 잔존가치다. 3년, 5년 또는 10년 사용 후 가치에 따라 배터리 렌탈 비용이 달라진다. 3년 후는 쓸만한데 5년이 지났을 때 성능이 크게 저하된다면 배터리팩이 탑재된 중고 전기차의 가격도 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방식은 배터리팩을 분리할 수 없는 완성차기업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반면 배터리 기업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배터리기업이 배터리팩을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어서다. 그래서 이들은 탈착식 배터리팩을 주목한다. 굳이 전기차 구매자가 충전하는 게 아니라 배터리 렌탈 사업자가 충전까지 완료해 대여해주는 방식이다. 처음 배터리에 충전된 전력이 소진되면 배터리 교환소에 가서 완충된 배터리팩으로 교체하고 운행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완성차기업의 방식과 충전을 누가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수익 방식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배터리를 빌려주는 사업자는 자동차회사와 달리 배터리 렌탈 비용 외에 전력 유통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한전으로부터 100원에 전기를 구입해 배터리에 담고 전기차에 빌려줄 때는 110원을 받아 유통 마진을 챙긴다. 그럼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배터리 렌탈 사업이 활성화되려면 규격화 된 배터리팩을 사용하는 탈착식 전기차가 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약점은 이미 완성차기업이 너무나 잘 알고 있어 결코 탈착식 전기차를 만들지 않는다.
그럼 배터리기업은 영원히 완성차기업의 공급사로 남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이들의 생각은 어느새 동일 차종의 위탁 생산에 쏠려 있다. 차라리 일부 완성차 제조사에 탈착식 전기차의 생산을 맡겨 시장에 투입하는 방식이고 대표적인 부문이 영업용 택시다. 그리고 때로는 배터리 교체식 시설을 갖추고 해외에서 이미 만들어진 전기 완성차를 수입해 배터리를 제외한 가격에 직접 판매할 수도 있다. AS 등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 근본적인 측면에선 배터리와 완성차 기업 간의 바스(BaaS, Battery As A Service) 전쟁인 셈이다.
그리고 둘의 전쟁에서 팔짱 끼고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완성차에 많은 부품을 공급하는 거대 부품 기업들이다. 이들 또한 자동차 만들기, 특히 전기차의 몸통 제작은 어렵지 않은 만큼 탈착식을 선호하는 배터리기업과 손잡고 자신들만의 독자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이때는 각 나라 및 지역 환경에 어울리는 특수 목적형 시장을 공략하게 된다. 굳이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완성차기업과 경쟁할 이유가 없다.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기차와 배터리의 관계는 물류 기업에게도 관심사다. 그런데 이들은 전기차의 몸통과 배터리 모두에 관심을 두되 특히 배터리 탑재 방식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배터리 셀의 적재 방식에 시선을 돌린다. 배터리셀을 바꾸면 그만큼 배송에 활용하는 전기차 수명을 늘려 차량 구매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 아마존이 활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따라서 "반값 전기차"는 한 마디로 전기차 전쟁의 서막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전통적 개념의 완성차기업, 배터리기업, 자동차 종합부품기업은 물론 모빌리티에 관심을 두는 또 다른 모든 기업에게 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