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한국 車산업, 생산의 경쟁 개념 바꿔야

입력 2021년05월17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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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생산-판매"의 분리 인식 전환 필요

 어떤 제조물이든 기본적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개발-생산"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생산된 물건은 판매과정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자동차도 제조물이라는 점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오랜 시간 자동차회사 또한 "개발-생산-판매"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개발-생산-판매" 일원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판매자는 시장이 넓은 곳을 찾아다니고 개발은 연구인력이 풍부한 곳을 선호한다. 그리고 생산은 어떻게든 효율성이 높고 비용 절감이 가능한 지역을 주목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자동차 외에 다른 공산품 또한 이미 개발-생산-판매 분리를 철저하게 시행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일례로 애플은 아이폰의 개발과 판매를 맡되 생산은 다른 곳이 책임진다. 그리고 생산자는 애플 외에 다른 기업의 기기도 얼마든지 생산 가능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에 기반을 둔 자동차회사도 전략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지엠은 국내에서 일부 차종의 개발과 생산을 맡지만 판매는 GM 본사가 판단한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시장 수요가 있는 곳에 투입하는 역할이다. 한국 내 시장 점유율이 낮은 것을 두고 점유율 확대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에도 글로벌 모든 시장에 국내 생산 차종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국내보다 해외가 우선이다. 그리고 이는 르노삼성도 마찬가지다. 부산 공장에서 만든 제품은 해외로 내보낼수록 지속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 르노 유럽 본사가 한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직장폐쇄로 맞선 것도 한국의 생산 역할을 강조하는 차원이다. 쉽게 보면 생산은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대체 가능하다는 점을 경고한 셈이다. 물론 쌍용차는 여전히 "개발-생산-판매"를 분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어디에 치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조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향후 "생산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조언이 대부분이다.  

 항목 분리는 현대기아차도 그간 꾸준히 진행해왔다. 수요가 많은 곳에 공장을 만들었고 맞춤형 전략에 따라 일부 차종은 현지 개발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롭게 수요가 발생하면 어느 공장에서 생산할 것인지 결정했는데 이때 조건은 생산성과 비용에 근거했다. 제조업의 특성 상 많이 팔리는 곳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생산-판매" 전략이 운용되는 셈이다. 

 그런데 언제나 갈등은 생산에서 벌어진다. 제조업의 숙명이 "생산"인 만큼 생산자 사이에서도 지역 및 제품을 놓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이 새로 공장을 하나 만들 때 1차적 갈등은 기존 공장의 설득에서 시작된다. 기존 공장은 신규 공장으로의 일감 분산을 경계하는데 그만큼 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탓이다. 반면 새로 공장이 들어설 지역은 반색하기 마련이다. 일자리가 늘고 지역 경제가 좋아져 세수 또한 늘어날 수 있어서다. 공장 유치를 두고 국내에서도 자치단체마다 사활을 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을 국내에서 글로벌로 전환하면 공장 유치는 국가 간 경쟁이다. 한국 내 자치단체장이 신규 공장 유치에 뛰어들 듯 국가 간 공장 설립은 통수권자 사이의 치열한 경쟁인 셈이다. 한국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가 해외 기업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기구를 설치하고 세제 감면 등을 시행하는 것도 결국 같은 배경이다. 

 이런 이유로 생산은 경쟁자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같은 기업의 국내 여러 공장이 동일한 집단을 형성하며 다른 해외 기업 공장과 비교됐지만 현재는 같은 회사 다른 국가 공장도 경쟁에 참여하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과거 토요타 일본 내 공장과 생산성이 비교됐지만 이제는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과 생산 경쟁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르노삼성 부산공장 또한 근로자들의 생각은 같은 한국 땅에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과 여러 조건을 비교하겠지만 정작 르노그룹 본사는 부산공장의 비교 대상으로 르노 스페인 공장을 삼는다. 두 공장의 생산비용 등을 조건 삼아 수시로 생산 배정을 저울질하는 중이다. 하지만 국내 생산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현대차 수준을 원하기 마련이어서 둘의 접점 찾기가 쉽지 않다. 서로 지목하는 경쟁 대상이 근본적으로 다른 만큼 접점도 쉽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국내 자동차산업의 근본적인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업과 생산자 간 경쟁자 개념부터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 외국기업의 국내 생산자는 한국 땅에 있는 다른 기업 공장을 경쟁으로 지목하는 반면 해외 기업에게 한국은 글로벌 여러 공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지엠 부평공장과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경쟁자는 울산의 현대차 공장이 아니고, 현대차 울산공장의 경쟁자는 토요타의 일본 공장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동일하게 인식할 때 갈등의 해결점이 보일 수 있다. 생산 또한 지역별, 국가별 경쟁에 돌입한 지는 오래됐지만 인식은 여전히 지역 또는 국가 내에 머무르니 말이다.  

 박재용(공학박사, 자동차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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