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친환경 보편적 이동, 런던 택시

입력 2021년06월08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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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EV에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탑승 실현

 일반적인 PHEV는 운행하지 않을 때 플러그(Plug)를 꽂아 충전한 뒤 전기로 구동하다가 전력이 소진되면 엔진이 작동하며 배터리 충전은 물론 발생 동력을 바퀴에 전달한다. 엔진에서 만들어진 동력이 바퀴를 돌리고 한편에선 충전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PHEV 뒤에 "레인지 익스텐더(Range Extender)"라는 단어가 붙으면 개념은 전혀 달라진다. 운행하지 않을 때 플러그를 꽂아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은 PHEV와 같지만 전력이 소진됐을 때 작동하는 엔진은 오로지 전기만 생산할 뿐 바퀴 동력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차들을 PHEV 레인지 익스텐더, 또는 "EREV(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라 칭한다. 배터리와 함께 탑재된 내연기관이 발전용이라는 점에서 PHEV 레인지 익스텐더에 사용되는 엔진은 작은 배기량이 대부분이다. 구동용이 아니기에 동력을 만들어 낼 필요가 없으니 굳이 대배기량이 필요 없다. 덕분에 전기로 구동 가능한 거리가 확장돼 도심 이동에 최적화 돼 있다. 

 국내에 선보인 레인지 익스텐더 최초 제품은 쉐보레 1세대 볼트(VOLT)다. 1.5ℓ 내연기관과 별도 배터리가 탑재돼 전기로 최장 64㎞를 구동하고 이후에는 휘발유로 전기를 만들어 주행했다. 배터리 용량이 작은 탓에 외부 충전 주행거리는 짧았지만 발전용 엔진의 효율은 ℓ당 17㎞에 달할 만큼 높았다. 탑재된 연료탱크 용량이 33ℓ였음을 감안하면 휘발유로만 561㎞를 갔던 셈이다. 하지만 볼트(VOLT)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GM이 레인지 익스텐더 시대가 열리기도 전에 엔진을 아예 없앤 BEV 볼트(BOLT)를 내놓은 탓이다. 배터리 전기차에 매진하며 전략적으로 BEV를 선택, 시장의 선구자 역할에 치중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PHEV 레인지 익스텐더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가 있었는데 바로 영업용 시장이다. 특히 택시로 대표되는 영업용은 24시간 주행에 따른 이동 거리가 많아 순수하게 전기로 모든 운행을 커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언제 호출될지 모르는 만큼 필요할 때 플러그를 꽂아 배터리에 최대한 많은 전력을 담고 운행하다 전기가 소진되면 소형 휘발유 엔진을 발전기로 사용해 추가 거리를 확보해야 시간 및 에너지 비용 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영업용 PHEV 레인지 익스텐더로 꼽히는 제품이 영국 런던에서 운행되는 LEVC TX다. 일명 런던 택시 또는 블랙캡으로 유명한 TX는 31㎾h 용량의 배터리와 1.5ℓ 3기통 휘발유 발전기가 탑재돼 있다. 배터리용량만 보면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28㎾h보다 크다. 하지만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1회 충전 후 주행거리가 200㎞에 달할 때 TX는 110㎞로 짧은데 이는 어디까지나 덩치와 무게 때문이다. 운전자를 포함한 7인승에 장애인도 휠체어에 앉은 채로 탑승 가능할 만큼 공간이 넓어서다. 그래서 TX에 탑재된 휘발유 발전기는 35ℓ의 연료만으로 400㎞가 넘는 거리를 이동시킨다. 단순 계산으로는 ℓ당 11㎞의 효율이지만 그 사이 충전을 하면 복합 효율은 급격히 상승한다. 영업용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200㎞)를 감안할 때 충전 후 영업에 나서다 운행 중 1회 충전이면 필요한 이동 거리는 전력으로 모두 충당 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TX의 진정한 가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접근 가능한 보편적 이동에 있다. 세계 최초 유니버설 모빌리티 디자인으로 전혀 불편 없이 휠체어를 탑승시킬 수 있다. 당연히 휠체어 탑승이라도 여유 공간이 있어 동반자도 함께 이동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영국은 일찌감치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는, 누구나 이동 가능한 겸용 택시로 TX 중에서도 택시 버전인 TX5를 투입해 보편적 이동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덕분에 한국처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장애인 전용택시를 별도로 운영할 필요가 없고 택시 사업자는 비장애인 승객 뿐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 태워 수익을 창출한다. 해마다 4,000억원 넘는 예산이 장애인 전용 택시 운영에 투입되는 한국과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런던에서 이동이 필요한 장애인은 정부로부터 바우처를 받아 블랙캡을 이용하면 되고 런던시는 이동 비용만 지원할 뿐 이동 수단 및 운전자 확보 예산은 최소화했다. 나아가 여기서 줄어든 비용은 장애인들의 이동 지원 횟수 증가로 연결해 이동 복지 향상을 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1대당 평균 3,000만원에 달하는 승합차를 자치단체가 구매한 뒤 추가로 돈을 들여 탑승 시설을 장착하고 별도 운전직을 채용해 장애인 이동을 지원한다. 그렇다보니 대당 투입되는 예산만 연간 1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동 수단의 운영비일 뿐 장애인들의 이동 비용은 추가로 지원된다. 전용 이동 수단이 없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동을 구분하다 보니 나타나는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그렇다고 장애인들의 이동 수요를 모두 충족하는 것도 아니다. 해마다 증가하는 장애인 숫자에 비춰 전용 택시는 턱 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예산 문제로 전용 택시 증차는 쉽지 않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선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는 보편적 이동 수단, 즉 영국의 블랙캡 같은 제품의 등장이 필연적이지만 국내 제조사는 수익성이 적다는 점에서 개발을 꺼리기 마련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해도 수요가 별로 없으니 시장성이 나오지 않는 탓이다. 

 그러자 결국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블랙캡이 한국에 도입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사회적기업인 코엑터스가 추진한다고 한다. 청각장애인을 기사로 고용하는 만큼 실현된다면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필요에 따라 탑승 가능한 수단으로 보편적 이동 가치가 만들어지게 된다. 게다가 PHEV 레인지 익스텐더 동력 시스템으로 도심 내 이동 효율이 높으니 한국도 보편적 이동 가치 실현에 한발 다가설 가능성이 보인다. 해당 차종을 활용하면 자치단체는 더 이상 장애인 전용 택시를 늘리지 않아도 되고 운송 사업자는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를 태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보편적 이동 가치 실현에 있어 제품의 국적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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