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전기차, 배터리 빌리는 시대

입력 2021년06월15일 00시00분 권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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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부터 영업용 택시 적용할 듯

 자동차회사와 배터리기업이 경쟁을 펼친다면? 지금은 배터리의 최대 구매처가 자동차회사라는 점에서 평온한 듯 보이지만 국내에서도 두 거대 기업 간 충돌은 불가피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둘 모두 궁극적으로 눈독을 들이는 사업이 바로 전력 유통사업인 탓이다. 

 기본적으로 배터리는 전기에너지를 담는 그릇이다. 따라서 누가 그릇에 전기를 담고 이를 되파느냐가 유통사업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런데 같은 그릇에 전력을 넣되 자동차회사는 차체에 고정된 배터리에 담으려는 반면 에너지기업은 별도 배터리에 담아 자동차에 다시 부착하는 탈착식을 은근 선호한다. 방식만 다를 뿐 발전사업자로부터 전기를 사서 되파는 형태의 사업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배터리 전력 유통사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두 업종 간 전략 차이는 분명하다. 먼저 완성차기업은 재빨리 충전 인프라를 늘려가되 짧은 시간 충전이 가능한 대용량 초급속 충전망을 확장해 전기차 이용자들의 배터리 분리 필요성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에 치중한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회사의 무기(?)는 전기차 개발 과정에서 배터리 충전 규격을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리 내놓을 전기차의 충전 용량을 직접 설계할 수 있는 만큼 충전 인프라 또한 선제적으로 가져갈 수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현대기아차그룹이 설치한 초급속 충전기 이핏은 800V 충전 시스템으로 18분 만에 배터리의 80%가 충전된다. 5분만 충전해도 최장 100㎞ 주행이 가능한 만큼 충전이 빠를수록 배터리의 분리 필요성도 낮아지는 셈이다. 하지만 인프라 확대에 필요한 별도 공간을 찾는 게 쉽지 않다. 특히 복잡한 도심에선 더욱 여유 공간이 없는 게 에너지기업 대비 불리한 대목이다. 

 이에 반해 SK, GS 등의 에너지기업은 현재 사용 중인 주유소 네트워크 활용 가능성이 높은 게 장점이다. 자동차기업이 충전기 설치 장소를 별도로 고민할 때 에너지기업은 장소 고민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미 곳곳에 자리잡은 주유소 간판을 ‘충전소’로 바꾸고, 주유기 대신 여러 개의 배터리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교체 시설만 갖추면 그만이다. 이때는 충전에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교환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이미 해외에선 3분 교체가 대세라는 점에서 전력 유통사업을 빠르게 확대 중이다. 그러니 에너지기업은 기존 주유소의 전환이고 자동차회사는 새로운 충전소 구축의 경쟁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필요에 따라 둘이 손을 잡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배터리에 대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력유통 부문에선 공생과 경쟁이 마치 양날의 검처럼 공존(?)한다.

 그리고 두 기업이 직접 부딪치는 영역이 존재한다. 바로 영업용 전기차 시장이다. 어떻게든 운송 비용을 낮추고 멈춤 없는 운행이 필수인 영업용은 충전 장소와 시간의 편리성이 매출과 직결된다. 충전 시간이 짧을수록, 충전 장소가 많을수록 사업에 도움이 되는데 자동차회사는 충전 장소가 불리하고 에너지기업은 교체형 전기차를 직접 제조하지 못하는 게 단점이다. 

 여기서 에너지기업이 주목한 것이 배터리의 평균 수명이다. 운전이 거친 사람과 부드러운 사람이 배터리를 서로 번갈아 사용하면 성능의 급격한 저하를 막아 재사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배터리 재사용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탈착식이 환경적으로 유리하다는 목소리를 조금씩 내는 중이다. 이에 반해 자동차회사는 고정식 배터리 또한 수명 측정이 가능하고 자동차 사용 후 떼어내 다른 곳에 충분히 활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배터리를 떼어낸 순간 멀쩡한 차체도 폐차할 수밖에 없어 자원 재활용 부족이라는 지적에는 적극 반박하지 못하는 중이다. 

 물론 아직 누가 주도할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게다가 배터리회사는 자동차회사에 물건을 공급하는 위치여서 섣불리 교체형 배터리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체형 배터리가 탑재된 영업용 전기세단이 곧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니 어쩌면 판도변화의 변곡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분리형 배터리와 고정형 배터리의 경쟁, 시작은 지금부터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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