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환 일자리 위기가 보조금 영향
"미국에서 생산되는 배터리가 탑재되고 미국에서, 미국인의 손으로 완성된 자동차는 보조금을 주겠다" 또한 "미국 생산 전기차에 미국산 배터리가 들어가면 추가로 보조금을 주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공개적으로 언급한 약속이다. 대통령에 오른 후 그는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미국산 전기차 규모를 중국 수준인 연간 120만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미국 시장을 중요하게 여긴 배터리 및 완성차기업이 앞다퉈 미국 생산을 선택했다. 그 중에는 한국의 현대차그룹을 포함해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도 포함돼 있다. 한국 공장에서 만든 배터리와 아이오닉5를 미국으로 보내봐야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팔리지 않는 탓이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미국 내에서도 별다른 갈등이 없다. 보조금 또한 세금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미국 생산 제품에만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하원이 자동차 노조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노조가 있는 자동차회사가 생산한 미국산 EV에 추가로 530만원 정도를 지원하겠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경우 미국산 전기차 보조금 880만원과 미국산 배터리 보조금 60만원을 포함하면 최대 1,470만원의 보조금이 전기차 한 대에 지급된다.
그러자 미국 내 완성차회사 간 갈등이 불거졌다. 토요타, 혼다, 테슬라 등은 반발하고 GM, 포드, 스텔란티스는 법안의 지지를 표명한다. 하지만 때로는 GM과 테슬라가 한목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복잡한 셈법이 시작됐다. 먼저 미국 자동차노조인 UAW가 조직된 곳은 GM, 포드, 그리고 크라이슬러를 산하에 둔 스텔란티스 등이다. 따라서 이들은 당연히 법안 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반대로 토요타 미국 법인은 최근 의회에 서한을 보내 미국 자동차 근로자 가운데 절반 가량이 속한 UAW 생산 전기차에만 추가 보조금을 주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항의했고 테슬라 또한 포드의 전기차 생산국이 멕시코라는 점을 지목하며 이는 잘못된 처사라고 힘을 보탰다. 혼다 또한 토요타와 입장을 같이 하며 미국 정부가 노동자 사이의 갈등을 조장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포드가 발끈했다. 포드는 법안이 통과되면 곧바로 F-150 라이트닝 및 E-트랜짓 밴 등의 EV 생산지역을 미국에 만들겠다고 맞받았다.
그런데 노조 존재 여부와 달리 GM과 테슬라가 힘을 합친 부분도 있다. 보조금 지급 대수의 20만대 상한 폐지다. 해당 법안에는 개별 기업의 전기차 판매가 20만대를 넘으면 단계적으로 중단되는 인센티브를 다시 살리는 방안도 있어서다. 일찌감치 전기차 판매에 나서 이미 20만대를 넘긴 GM과 테슬라로선 일종의 사라졌던 보조금의 부활이니 공동 전선을 펼치면서도 노조 부문에선 대립하는 셈이다.
하지만 노조 존재 여부가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 항목에 올라선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적지 않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자리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노조의 존재 여부로 전기차 보조금 규모가 달라지는 것은 전기차가 정치의 영역에 포함돼 향후 산업 내 극심한 갈등이 유발될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신생 전기차 기업이 소규모로 소량의 제품을 만들어도 노조가 없다는 이유로 추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전기차 육성이 아니라 관련 기술 기업들의 창업 생태계 붕괴로 연결될 수 있다는 목소리다. 한 마디로 노조의 보조금 지급 기준 포함은 스타트업과 대기업, 노조 없는 기업과 있는 기업 간의 연속적 갈등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정치 영역은 노조를 선거 지원군으로 받아들여 든든할지 모르지만 산업과 노동 영역에선 노조 여부가 일종의 편가르기에 해당돼 전기차 전환 속도를 오히려 늦출 것이라는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항목을 제외한 "미국산 전기차"에 대한 집중적 혜택은 모든 자동차기업이 반기고 있다. 전기차로 산업 전환을 이루기 위한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에 생산 기지를 둔 모든 자동차기업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지 보조금은 사실 국가 간 일자리 문제가 근간이다. 쉽게 보면 한국 내 생산 전기차의 미국 수출을 원천 차단하는 탓이다. 전기차 전환이 가져올 일자리 축소 문제를 거대 시장 기반의 "자국 우선주의"라는 정치적 선택으로 해결하는 셈이다.
따라서 미국의 전기차 우선 주의를 바라보는 한국 또한 개별 영역으로 들어가면 저마다 초점이 다르다. 소비자 관점에선 전기차를 누가 만드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정치 영역에선 전기차를 어디서 만드느냐가 훨씬 관심이며, 기업은 오로지 시장만 바라본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을 가져가야 할까? 무엇보다 미래 일자리가 달린 중요 사안인 만큼 누군가 앞장서 지혜를 모아봐야 하지 않을까? 광주글로벌모터스의 캐스퍼 출시를 두고 정치권이 앞다퉈 공장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 전기차 우선 주의가 결국 한국 내 자동차 일자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정치 영역이니 말이다.
권용주(자동차 칼럼니스트, 국민대 겸임교수)